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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물림 사회, 서민들의 허탈함이란
‘가족’ 만큼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끄는 단어도 없을 게다. 하지만 때로는 이 ‘가족’의 의미가 대단히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조폭 영화 같은 걸 보면 흔히 나오는 대사 중 “우리가 남이가. 가족 아이가.” 같은 말 속에 들어가 있는 ‘가족’이 그렇다. 이 말 속에 담긴 가족의 의미가 영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저들끼리 다 해먹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패밀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거기에도 서민들의 불편한 정서가 들어가 있긴 마찬가지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가족처럼 돌보고 지내는 이웃의 이야기에 담긴 것처럼 확장된 의미의 가족 개념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하지만 이처럼 열린 의미가 아닌 꽉 닫혀 폐쇄적인 의미를 담은 가족 개념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은 가족애가 자칫 잘못된 방식으로 과도해져 가족 이기주의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저들끼리의 가족 이기주의는 그 안에 응당 들어가야 할 타인의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가족에 대한 우리네 판타지 때문일까. 최근 몇 년 동안 이른바 ‘가족 예능’이 많아졌다. SBS <아빠를 부탁해>가 처음에는 연예인의 가족이 궁금하기도 하고 의외로 매력 터지는 모습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차츰 방송이 상업화되고 연예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연예인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 관심은 점점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처음 방송과 그 출연자들은 절대 부모의 후광을 통해 쉽게 연예인이 되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연기자로 활동하는 이도 생겼고, 부모와 함께 광고에 등장하는 건 다반사가 되었다. 가족 예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업체들은 효과가 200%라는 PPL을 넣기 위해 이들 프로그램에 줄을 서게 되었다. 애초에 가족 간의 소통과 공감을 목적으로 했던 프로그램은 이제는 위화감을 주는 프로그램이 되어갔다. 아이까지 명품 옷을 입고 나오고 서민들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고가의 프로그램들을 맘만 먹으면 척척 하는 그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가족 예능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과도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연예인보다 더 많은 대물림의 사례들을 우리는 정계든 재계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많은 갑질 논란들의 대부분은 사실상 대물림 받은 2세들에게서 나왔던 것도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 연예인들의 대물림 정도야 가볍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정은 정반대다. 정재계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별반 흥분하지 않던 이들도 가족 예능을 통해 대물림되는 연예인을 보면서는 한 마디씩 보탠다.

이렇게 된 건 연예인과 정재계 인물들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예인들은 서민들의 대변자처럼 여겨왔는데 그들 또한 똑같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믿었던 마음이 더 큰 배신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똑같은 절차를 밟아 연예계로 들어온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 없을 게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고정 방송을 차지하며 들어오는 것이고, 그것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확장된 가족 개념을 느끼게 해줘야할 프로그램이 ‘저들끼리의 가족’이라는 폐쇄적 가족 개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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