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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올바른’의 역사, 그 비극의 역사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춘추말기 노(魯)나라 실권자였던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에게 묻는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한다.

“정치(政)란 바름(正)입니다. 스스로 바름으로써 통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

계강자가 다시 묻는다.

“제대로 따르지 않는 이들을 죽여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에 공자는,

“정치를 하는 데 어찌 살인을 할 수 있습니까. 지도자가 선(善)하고자 하면 백성들도 선해질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공자의 말은 이 외에도 많다. 또 공자의 정치철학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굳이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을 인용한 까닭은 ‘바름(正)’ 때문이다.

공자는 그른 것을 바르게 하려고 강제하지 않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공자의 정치철학이 처음으로 중국 전역에 확산된 한(漢)나라 때다. 전성기인 무제(武帝) 때에는 경제정책을 두고 조정 안에서 대립이 격화되던 때다. 무제는 자신이 ‘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며 따르라고 명한다. 그런데 한 신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나타냈다. 무제는 그에게 ‘마음 속으로 황제를 욕한 죄’, 즉 복비죄(腹誹罪)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 이 신하는 ‘바른’ 것에 따르지 않은 대가를 치른 셈이다.

공자의 철학 위에 세워진 조선. 전성기이자 가장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던 연산군때 첫 사화(史禍)가 벌어진다.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초의제(楚義帝)를 시해했던 고사를 세조(世祖)가 조카인 노산군(魯山君)을 죽인 사초(史草)에 담았다는 이유다. ‘바른’ 역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관을 비롯해 수많은 사림들이 죽임을 당했다.

무오사화(戊午史禍) 이후 갑자(甲子)ㆍ기묘(己卯)ㆍ을사(乙巳)의 사화(士禍)가 잇따르며 ‘바름’과 ‘그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정치, 아니 싸움이 이어진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옥사(獄事)와 환국(換局)이 뒤를 이었다. 서로 ‘옳음’을 주장했고, 패자(敗者)에게는 ‘대역죄(大逆罪)’의 낙인이 새겨졌다.

정부가 만들 국정 역사교과서의 지향점은 ‘올바른 역사관’이다. ‘어떤 기준에 비추어 보아 어긋남이 없다’는 ‘옳다’와,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이 곧거나 반듯하다’는 ‘바름’이 합쳐진 말이다. 비뚤어지지 않고 어떤 기준에 꼭 부합하는 역사관인 셈이다.

이제 ‘올바른’ 역사관이 확립되면 ‘올바르지 않은’ 것들은 더욱 두드러질 게 뻔하다. 벌써부터 ‘좌편향’, ‘좌빨’, ‘종북’을 지나 ‘빨갱이’까지 등장하고 있다. 공자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역사다. 그 역사대로면 승리하는 쪽, 권력을 가진 쪽이 ‘올바름’이요, 지는 쪽, 권력을 잃은 쪽은 ‘반역자’다.

이민자와 난민, 다른 인종과 다른 종교인 등 배척세력을 내세워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방법은 꽤 오래된 권모술수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내부에서 배척점을 찾는다. 역사까지 동원한 이념전쟁이다. 사실 국민들끼리 싸워봐야 쌀이 나오지도, 돈이 생기지도 않는다. 다만 국민들의 ‘피’를 먹고 권력만 더 살벌해 질 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정치는 몰라도, 올바른 정치란 적어도 현실에 없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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