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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신창훈] 마스크를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이
일본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かけるな!)’란 말을 알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일본인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다. 전철 안이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떠들면 부모는 반드시 “조용히 해. 민폐인걸 모르니?”라며 세게 나무란다. 길거리 곳곳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는 이제 그만!’이란 표어가 붙어 있다.

‘메이와쿠(迷惑)’는 일본인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무슨 일이건 개인보다 공공의 질서 또는 이익을 중시하는 태생적 성향 탓이다. ‘공공의 이익’은 철학적이고, 매우 복잡한 가치판단의 문제다. 가끔은 특정 집단이 만들어 놓은 질서가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될 때가 있다. 

유모차를 끌고 아침 출근 시간 혼잡한 전철을 타는 아이 엄마의 행동을 생각해 보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복잡한 전철을 타는 건 분명히 전철을 타고 있는 사람, 즉 ‘특정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할 수 있다. 혼잡한 전철 안 유모차를 ‘민폐’로 취급하는 분위기라면 그 사회는 보육 친화적이지 않다. 일본이 딱 그런 사회다.

일본인 입장에서 전철 안 유모차는 한 개인에게 ‘집단 질서’의 예외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집단이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고 비판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려면 그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하면 된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 집단행동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압력과 같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할 게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 반드시 요구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행동수칙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드러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우리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메르스는 온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지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메르스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질서 중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메르스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온 이유를 점검해야 한다. 그 안에는 보건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전염병에 취약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도 있다.

메르스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우리는 마스크를 많이 착용했다. 특정 마스크는 약국에서 동이 나기도 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하지 않는다. 일본의 전철을 타보면 별일이 없는 것 같은데, 꽤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한 걸 볼 수 있다. 일본인은 ‘내 침’이 남에게 튈까 봐 마스크를 하고, 우리는 남의 침이 나에게 튈까 봐 마스크를 쓴다. 마스크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우린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사흘 동안 머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80여명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한 14번 환자를 기억한다. 만약 그가 마스크를 착용했다면 메르스 사태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마스크를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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