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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김영배]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노동계가 해외에서 빨간조끼를 입고 피켓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시위자 중 한명이 화장실을 가려고 폴리스라인을 벗어나자마자 경찰이 제지했다. 피켓을 내려두고 조끼를 벗지 않으면, 폴리스라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시위자들은 경찰의 지시대로 조끼를 벗고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서울광장, 광화문, 청계천을 지척에 두고도 집회나 천막농성, 교통통제가 있을까봐 선뜻 나서기를 망설이는 우리에겐 너무 낯선 풍경이다. 집회ㆍ시위마다 자극적인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만 치중하는 모습을 봐온 필자에게 이 사례는 작은 에피소드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이자,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근거와 진실된 목소리로 설득해야 함은 당연하다.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편법을 쓰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위법을 저지르는 방법으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며 굴뚝농성을 하거나, 신고도 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집회를 하면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소음을 측정할 때만 볼륨을 줄이는 방법으로 법을 회피하기도 하고 체포의 걱정없이 질서유지선을 마음대로 넘나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듣고 보는 외국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다. 실제 워싱턴에서는 국회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었다가 경찰에 체포돼 연행된 적이 있었다. 독일연방법원은 불법ㆍ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물대포나 최루탄 사용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평화적인 집회는 최대한 보호하는 반면, 불법ㆍ폭력시위는 용인하지 않고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집회ㆍ시위로 인한 타인의 손해를 배상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불법을 저질러도 훈방조치나 벌금 등의 경미한 처벌에 그치고 만다. 이처럼 불법행위에 대한 합당한 제재가 없기에 불법ㆍ폭력집회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어떻게 법집행을 하는지에 따라 시민들의 준법의식과 질서유지 수준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지난 최저임금 논의기간 중에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집회가 있었다. 해당 교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최저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정한 조정자가 돼야 할 국가기관의 공익위원마저 집회의 방식으로 압박받고 있다.

나아가 1인 시위는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용하여, 특정인의 집앞에서 릴레이 1인 노숙농성을 하거나 입법의 공백을 이용해 야간옥외집회를 하는 것도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주거의 안전과 평온이라는 법률상 개념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집회ㆍ시위에 대한 섣부른 관용이 우리를 만용으로 이끌어 버린 결과다. 타이틀은 기자회견인데 실제로는 대형집회를 능가하거나, 문화제ㆍ추모제 형식을 빌어 법을 회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집회ㆍ시위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시민의 안전, 재산권, 수면권, 학습권 등도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 이어지는 집회로 인해 주변 상인들이 받는 피해도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어린이집 주변에서 집회나 시위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 등도 필요하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고,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 불쾌감을 주면서, 나의 주장을 설득하려 한다면 넌센스다. 광장을 시민이 안심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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