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한때 삼성그룹 총수가 될 것으로 보였던 그는 경영권을 눈앞에 두고 평생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이맹희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제밀모직, 중앙일보 등 무려 17개 주력 계열사의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으로 활약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에서 울산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나는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1986년 펴낸 자서전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맹희 전 회장은 1993년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6개월이 아니라 7년이었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맹희 전 회장이 삼성그룹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것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의 심한 갈등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69년 동생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 삼성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냈을 때 이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게 이맹희 전 회장이 후계자에서 밀려난 결정적 이유였다는 소문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회고록에서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삼성에서 쫓겨난 뒤 대구와 부산 국내 산간벽비를 떠돌며 생활했다”고 술회했다. 또 “(가족들이) 부산의 어느 양심없는 의사를 찾아가 당시 돈으로 300만원을 주고 내가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냈다고 한다”고 적기도 했다. 그는 이후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했다 실패했고, 1980년대부터는 몽골과 중국 등 해외를 떠돌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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