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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재벌 체험은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
입사와 동시에 문화 충격은 시작됐다. 상사의 방에서 들리는 고성과 뭔가 날아가는 소리. 비서는 무덤덤했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서류나 사전을 (부하직원에게) 던졌을 거예요. 자주 있는 일이니 놀라지 마세요” 에리크는 풍자적으로 독백했다. “에리크,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

2003년 LG전자에 입사한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 그는 계단을 오르듯이 3년 단위로 이력을 쌓았다. 2006년 상무 승진, 2009년 프랑스 법인장, 2012년 퇴사. 

그가 최근에 낸 책 ‘한국인은 미쳤다!’는 적나라하다. 한국 재벌기업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에게 한국 재벌기업의 문화는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 ‘부하에게 막 대하는 상사’, ‘주말과 가족이 없는 삶’, ‘맹목적인 복종 문화’, ‘위선과 허례로 가득 찬 의전 문화’ 등등. 상무 승진 후 있었던 임원연수와 축하만찬은 절정이었다. 주입식 세뇌교육과 회사에 대한 맹목적 헌신을 강요하는 폭탄주와 군대식 구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도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욕으로 10년을 버텼다. 바위를 친 계란은 깨졌다. 쫓겨나듯 물러났다.

LG는 상징일 뿐이다. 롯데 사태가 방증한다. 예외인 재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에리크도 인정은 한다. 일사불란함이 가져다 주는 효율성, 모든 사항을 통제하는 세심함, 명확한 목표의식과 강력한 추진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음을.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스티브 잡스가 매장에 들고나도 직원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애플의 시대이고, 같은 옷만 1년 내내 입는 마크 주커버그가 직원들과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는 페이스북의 시대이며, 부회장이 온다고 유통매장 제품을 전부 자사제품으로 갈아치워야 하는 기업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한 그런 시대가 됐다.

김필수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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