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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가축인듯, 가축아닌, 가축같은~ ‘개’
삼복(三伏) 더위가 기승인 이 맘 때면 빠지지 않는 게 ‘보신탕 논란’이다. “인간의 오랜 친구를 먹을 수 있나”는 주장과 “소와 돼지를 먹는 것과 다를 것 없다”는 반론 사이에는 한 치 양보가 없다. 올해도 날 선 공방은 여전했다. 초복을 즈음해 서울 시내 곳곳에선 개 식용 야만성을 고발하는 시위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보신탕집으로 통칭되는 개고기 전문점들은 보란 듯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랜 역사와 문화에서 유래된 식습관을 함부로 야만이라고 규정하는 야만성을 규탄하면서….

개고기 식용과 그에 따른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게 본격화된 계기는 서울 4대문안 보신탕집 영업을 제한한 1983년 서울시 조치가 아닌가 싶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혐오식품을 먹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이유로 보신탕집들이 쫓겨난 것이다. 그 바람에 서민들이 즐겨찾던 보신탕은 졸지에 혐오식품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우리 식문화조차 외국인들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도 무척 상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조치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벌써 30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접점을 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정답도 없는 뻔한 다툼에 굳이 한 줄을 덧붙일 생각은 없다. 다만 개 식용이 보편화된 현실을 더는 외면해선 안된다는 건 분명 직시해야 한다.

개는 축산법에 가축으로 분류돼 있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이 적용되는 축산물이 아니다. 개를 축산물로 인정하면 개고기 식용을 공식화하는 꼴이 되니 섣불리 범주에 넣지 못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축인듯, 가축아닌, 가축같은~’ 어중간한 위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소 돼지 등 식용이 허용된 가축은 법에 따라 지정된 도축장에서 도축과 가공을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개는 축산물이 아니어서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도축과 유통관리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실제 개고기가 대규모 유통되는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등에선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식용 개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도살되고 있다. 그나마 이런 곳에서 처리되는 것만 해도 나은 편이다. 시골 헛간 한 구석이나 심지어 야산에서 비위생적으로 도살되고 유통되는 개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법정 축산물이 아니어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국적으로 연간 200만마리 안팎의 개가 고기로 팔려 나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충 잡아도 국민 한사람당 보신탕 한 그릇과 고기 200g 1인분씩을 먹고도 남는 엄청난 양이다.

소와 돼지에 버금갈 정도로 개고기가 소비되는 현실을 정부 당국이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위생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다. 이쯤이면 축산물로 인정하고 도축과 유통을 양성화하든지, 아니면 식용을 전면 금지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눈치만 보며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식문화도, 동물보호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국민건강이다. 욕을 먹더라도 공론화하고 접점을 찾는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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