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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이병훈] 6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필름
‘해방 후 최초의 문예영화’, ‘영화배우 조미령의 데뷔작’으로 잘 알려진 이규환 감독의 1948년작 ‘해연 海燕(일명 갈매기)’(이하 ‘해연’)이 일본에서 발견되어 지난 6월, 67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필름이 발견된 곳은 고베 영화자료관. 야스이 요시오(安井喜雄) 관장에 따르면 이 필름은 2011년 한 고물상에서 우연히 찾아내었다고 하니, 자칫 일본을 떠돌며 영원히 잊혀질 뻔 했던 해방기 한국영화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연’의 발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이 영화는 1940년대 후반 우리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영화는 당시 고아나 부랑소년들을 모아 집단생활을 시키며 농업과 공예 등을 가르치던 소년감화원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의 선생님과 아이들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 우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물론 픽션(fiction, 허구)이지만, 사진이나 글이 아닌 영상으로 그 시대의 의상과 건축, 말투와 생활습관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후속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된다.

둘째, ‘해연’은 보존율이 취약한 1940년대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영화사의 사료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한국에서는 총 89편의 극영화가 제작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영화는 16편에 불과하다. 당시 제작된 영화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실되고, 해외에 헐값에 팔렸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필름에서 추출되는 소량의 은을 팔아 연명했는데,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필름은 ‘후대를 위해 보존해야할 유산’이라는 인식보다 ‘생계수단’에 더 가까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해연’은 왜 일본에서 발견되었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해연’의 제작자 이철혁의 부인이자,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조미령 씨의 말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전 이철혁이 일본에 가기로 계획했고, 당시 먼저 일본에 운송한 필름이 수십 년을 떠돌다 이번에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필름은 예민한 화학적 특성 때문에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 맞춰 전문적인 시설에 보존하지 않으면 수축되거나 변질된다. 사실 오랜 기간 실온에 방치되다 뒤늦게 발견된 많은 필름들은 결권, 혹은 훼손도가 심해 볼 수 없는 상태가 많으나 다행히도 ‘해연’의 필름 상태는 훼손이 덜 된 편이었다.

훼손도가 심할수록 화질개선을 위한 복원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어떤 경우는 활용이 불능한 경우도 있다. 필자는 올해 한규호 씨가 소장하고 있던 미보유 필름 94편이 되살아 돌아온 것처럼 지금도 해외는 물론 국내 어딘가에 제2, 제3의 ‘해연’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잊혀져 있는 필름들을 지금 찾지 않는다면 복원하는 시간과 비용에 앞서, 이 필름들이 폐기물로 전락할 상황을 걱정해야 할 지 모른다. 이것이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해외에 산재된 극영화와 한국관련 기록영상물들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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