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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ople & Story]CF감독, 교수…金장관이 사는 법
서계동 ‘장민호백성희극장’ 옆 국립극장 사무동 2층엔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가 들어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 하얀 벽에는 검은 화살표시가 그려져 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봤더라도 금새 잊었을 그런 표시다. 화살 표시 외에는 그 어떤 지시어도 없다. 누가 어떤 뜻에서 그린 건지 아는 이는 없는 듯 했다. 이를 한 눈에 알아본 사진기자가 그 옆에 김종덕(58)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세웠다. 사진기자에게는 그 화살표가 직감적으로 멋진 피사체로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장관은 그 기호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걱정이에요. 추경예산이 결렬돼서. 관광업계와 공연계가 화가 나 있어요. 메르스 때문에 이대로 한두 달 가면 도산업체가 속출할 텐데…”

김 장관은 국회일정으로 15분 늦은 이유를 그렇게 둘러댔다. 일주일 전, 메르스 여파로 뚝 끊긴 중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과 홍콩을 방문한 김 장관으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다. 8월말까지는 관광객유치를 예년의 80퍼센트 수준까지 회복시킬 예정이지만 올해 750만명 유치는 수정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지금 열심히 해야 9,10월에 관광객을 오게 할 수 있거든요. 10월까지는 예전 수준으로 돌려놓고 겨울에는 그 이상으로 뛰어야죠.”

김 장관은 이번 메르스 사태로 교훈 하나를 얻었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지금의 중국 특수를 잘 관리하면서 중국관광객이 뚝 끊길 수 있는 그런 날에 대비해 다각화 노력을 해야죠. 예방주사 세게 맞은 거라 생각하고 여러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취임 1년을 꼭 한달 앞둔 지난 21일, 김 장관에게 지난 11개월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부터 나왔다.

“진짜 길고 힘들고 어렵고, ‘잘하고 있나’ 잘 모르겠고,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의외다. 외부에 알려진 장관의 모습은 단호하고 매섭고 차갑다. 심지어 남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고 밖에서는 ‘오만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역시 사람문제였다. 외부에서는 ‘인사 난맥’이라고 연일 지적해온 부분이다. 시작은 방석호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사장과 오승종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의 임명. 둘 다 홍대 법대 교수라는 게 그와 얽혔다.

“엄밀히 얘기하면 두 분은 서울대 분들이에요, 교수생활만 홍대에서 한 거죠. ’홍대‘를 지적하는 건, 홍대 출신을 계속 자리에 쓸까봐 혹은 ’홍대‘를 위해서 뭔가를 하려는 거 아닌가를 걱정하는 거잖아요. 홍대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역량있는 분들이 배제돼선 안돼죠.”

김 장관은 전문성 결여로 지적된 법대 교수 출신 방석호 사장 임명건에 대해선 다른 속뜻을 내비쳤다.

“아리랑TV는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어요, 관련 법이에요. 안정화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니까 인재들이 나가고 계속 계약직을 써야 하는 형편이에요. 110여개국에 한국을 알리는 방송인데 인재들이 들어와야 좋은 콘텐츠를 내보낼 수 있죠. ”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김학민 국립오페라단장 등에 대해서도 그는 일일이 해명했다. 그의 인사 원칙은 단순하다. 능력과 혁신 두 가지다. 그에 따라 한 차례 공모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한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경우, 외국인 관장 채용까지 폭을 넓혀 8월중 공모할 방침도 세웠다.

“음악계나 미술계나 그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분, 혁신할 수 있는 분을 모시려는 거죠. 문화계는 그동안 혁신의 대상이 사람인 경우가 많았어요. 누가 기관장, 단체장을 맡느냐에 따라 편파적이 되곤 했어요. 제가 바꾸려는 건 파벌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과 상관없는 사람을 쓴 게 다른 오해를 불러온 거 같아요. 많이 배웠습니다.”

혁신은 공무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중심이 그의 평가방식이다. 공무원사회에서는 낯선 말이다.

업무방식도 다르다. 취임 초 장관들이 일반적으로 소통이란 이름으로 현장을 쫒아다니고 주위의 얘기를 듣는 것과 반대로 김 장관은 문체부의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 걸 먼저 했다. 내부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았던 이유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독려해서 밀고 가고, 결정한 일을 후회하거나 뒤돌아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는 순전히 ‘김 감독’ 시절과 관련이 있다.

CF 감독으로서의 그의 짧았지만 화려한 경력은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

장관의 마지막 광고작은 그 유명한 1997년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게토레이 광고다. 제일제당이 국내 스포츠선수 중 최고금액을 지급하고 제일기획이 제작한 이 광고가 당시 홍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있던 김 장관에게 온 것은 그의 명성을 입증해준다.

84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88올림픽 때 미국 NBC 스텝으로 국내에 잠시 들어왔던 그는 90년에 귀국해 선우프로덕션에서 CF감독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년 후 독립한 그는 ‘영상인’이라는 프로덕션을 차려 재미를 톡톡이 봤다. 1년에 100편을 찍었을 정도로 잘 나갔다.

“지금은 가장 잘 나가는 게 통신회사 광고지만 당시에는 구두, 제화 광고였어요. 그 쪽은 제가 거의 다 했죠. 음료광고도 그렇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91년 봄여름가을겨울의 2인조 밴드 김종진, 전태관과 함께 찍어 빅히트한 랜드로버 광고. 거대한 뗏목 위에 지프차를 올리고 예닐곱명의 청춘이 노래하고 연주하며 떠남의 설렘과 여유를 보여주는 광고다. 문제는 뗏목. 지프를 올릴 만큼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선 떠받칠 수십개의 드럼통이 필요했다. 뗏목은 충주호에서 만들고 촬영은 제천에서 하자니 실어나르는 게 고역이었다. 밤새 끌고 갔던 기억이 새롭다. “봄여름가을겨울과는 여러 번 시리즈를 제작했기 때문에 친해졌어요. 최근에 전태관씨가 암에 걸렸다는 얘길 들으니 안타깝네요.”

잘 나가던 ‘김 감독’에게도 어김없이 시련은 왔다. 믿고 맡긴 경리부장이 금융사고를 낸 것. “1년간 돈을 모아서 빌딩을 사자 했는데 그렇게 다 날리고 나니까 더이상 일을 하기가 싫더라고요.”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CF감독의 길을 계속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의 짧은 감독 시절은 막을 내렸지만 어쩔 수 없는 기질은 이어졌다.

스승의 권유로 돌아간 학교는 그에게 그야말로 ‘인생학교’였다.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학생들이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초기의 제자들은 그를 대체로 무서워한다. 워낙 독한 소리를 잘하는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라졌다. 요즘 제자들에게는 ’아빠같은 선생님‘으로 통한다. “저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그림 잘 그리는 것보다 인사 잘하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잘 사는 거라고 얘기해요.”

그림을 잘 그리려면 잘 놀아야 한다는 것. “학(學)은 분석하고 리서치해야 하지만 예(藝)는 타고 노는 거죠. 영상은 잘 엮어내는 게 중요해요. 제가 디자인 중에서도 영상으로 유명해진 건 사람을 엮어 넣고 어울리고, 목표를 정해 ‘가자’ 하는 걸 잘 했던 것 같아요.”

근 1년 전, 문화예술계에 예고없이 깜짝 등판한 장관을 다들 ‘학자풍’이라고 얘기했다. 외견상 그랬다. 선입견은 이내 깨졌다. 익히 알던 교수 이미지와 영 달랐다. 일의 방식이 우선 판이했고, 그의 취향이 독특했다. 백두대간을 다 밟아낸 산악인이라는 건 서곡에 불과했고 그가 암벽등반 마니아라는 사실에는 놀라움이 컸다. 행글라이딩이 그의 취미 목록에 들어있다는 데에선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됐다.

“장관이 되고나서 접었지만 작년까지 지난 3년간 암벽등반을 했어요. 젊었을 때 했다가 결혼하고 못했는데 그 즈음 ’바위타고 싶다‘는 생각이 불뚝 들더라고요. 암벽등반요? 아찔하고 찌릿한 매력이 있죠. 무엇보다 그것만 집중할 수 있는 게 좋죠. 몸뚱아리 하나를 완전히 느끼게 되죠. 끝난 다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그의 눈이 빛났다. 암벽등반이라면 한두 시간은 족히 늘어놓을 기세다. 적당한 피트감이 있는 셔츠에도 굴욕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그의 몸 관리 비법도 암벽과 연관성이 있을 거다. 거침없는 질주본능을 지닌 그가 암벽가들의 꿈이랄 미국 요세미티 엘 캐피탄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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