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였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책임은 회피하지 않았고 대책은 구체적이었다. ‘끝까지’ ‘모든’ ‘철저히’ 란 단어에는 강한 의지도 담겼다. 이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후 사과문을 지난주말내내 손수 다듬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메르스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총수로서 책임지는 이미지를 각인했다고 평했다.
이번 사과는 삼성이 겹악재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로 전락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돼버렸다. 외국계 투기자본과 메르스사태에 끌려다니는 삼성의 모습은 예전같지 않다는 평이 쏟아졌다. 이들 사태는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공통점까지 떠안고 있다. 크고작은 사건이 많은 삼성에도 이번처럼 초기 상황판단을 잘못해 악화시킨 사례는 드물다. ‘초일류’와 ‘관리의 삼성’ 이미지는 단숨에 금이 갔다. 삼성의 저력마저 의심받는 실정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강도높은 혁신을 예고했다. 수술대에 먼저 오르는 곳은 삼성서울병원이다. 이 부회장은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을 받은 후 응급실 등 병원체계를 전면개편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의 혁신은 그룹 전체에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안팎에서는 엘리엇사태로 그룹 컨트롤타워의 위기대응능력에 대한 회의론과 자성론이 거세다. 재계는 삼성이 엘리엇사태가 마무리되는대로 그룹 전반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사태에서 노출됐던 그룹과 계열사간 소통체계와 의사결정구조의 취약점도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거세졌지만 이를 계기로 허점을 재정비하겠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의 리더십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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