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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단은 왜 신경숙 표절을 표절이라 말 못하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주요문학출판사의 문학잡지는 평론가들로 편집위원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상업성을 문학성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부심을 갖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이하고 모순된 방식이 하나의 조직문화로 자리잡고 작가를 유사가족처럼 무한애정을 갖고 보호하고 배려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심보선 시인)

23일 오후 서교예술심험센터에서 신경숙 표절 사건과 관련해 열린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의 긴급토론회는 일명 ‘침묵의 카르텔’이라 불리는 문학권력에 대한 맹타로 뜨거웠다.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높은 관심속에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신경숙 작가의 이날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출판사에 명확한 입장의 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또 신경숙의 작품을 주로 출판해온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의폐쇄된 권력구조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도 나왔다.

이 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명원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의혹을 둘러싼 사실과 진실, 맥락의 문제를 짚었다.
이 씨는 신경숙의 문제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명백한 표절이라고 못박고, 단지 한 문장을 그대로 옮긴 다음 변용한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모티프와 구조가 상당한 영향을 받은 의식적인 표절이라고 규정했다.

이 씨는 한국문단과 비평계에서 신경숙 처럼 ’무오류의 권위‘를 확보한 작가는 드물었다며, ”그것은 적어도 이해관계 동맹체로 변질된 주요 문학출판사와 매체에서 신경숙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가 더이상 등장할 수 없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비평공간에서 이견을 지닌 비평가들은 대부분 한 줌의 중심의 질서 바깥에 비체제 지식으로 존재하고 있다.(중략)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한국문학이 이렇게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되어 경과했던 10수년의 실험이 희비극적으로, 어떤 희망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 사건의 선결과제로 작가의 확정적인 표절 인정과 책임, 관련 출판사들의 자체 진상 조사와 책임있는 입장 표명, 문학공동체의 윤리의식 회복을 제안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문학권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오 씨는 이번 신경숙 표절 사건을 한국문학의 상징의 붕괴로 해석, 신경숙 신화가 깨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1990년대 등장한 출판상업주의와 동인, 에콜 중심으로 작동하는 문학권력의 폐쇄성에서 찾았다.

“1990년대 한국문학은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사회‘, 그리고’세계의 문학‘의 질서 속에 새롭게 ’문학동네‘가 문학의 상징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문학동네‘는 ’신경숙 신화‘의 주역이었다. 중요 문학출판사는 문예지를 중심으로 문학생산의 토대를 장악했다. 신인문학상 제도를 통해 ’등단제도‘를 장학하고,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한다. 이들 신인작가들은 중요 문학출판사들이 운영하는 계간지들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창작과비평‘’문학과사회‘’문학동네‘’세계의문학‘등이 판매부수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발간되어야 하는 매커니즘이 여기에 있다. 또한 문학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문학적 권위의 상징을 독점하고 있기도 하다. 문학상을 수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발간하고 또는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의 문학단행본을 간행함
으로써 문단의 질서가 고착된다”

그는 현재 문학출판계에서 문학적 권위를 점유하고 있는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는 출판상업주의의 아성이라며, 신경숙 신화의 실체는 “한국의 대형출판사들이 연합해 ’한국대표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경직된 질서속에서 젊은 작가들의 창조성은 좀처럼 활력을 획득하기 힘들다며, 등단시스템, 문학매체 발간시스템, 문학상수여 시스템, 문학출판 관행 등과 같은 일련의 문학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문학권력의 외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씨는 신경숙 표절사건으로 민낯을 드러낸 것은 한국문학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건강한 질서가 성립하려면 새롭게 부상하는 전복적 흐름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문학적 신념에 따라 작가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지정토론자로 나선 심보선 시인은 권력화된 비평, 상업성을 문학성을 바꾸는 교묘한 비평작업에 칼날을 들이대며, 주요 문학출판사 평론가들의 ‘한국문학수호논리’를 비판했다. 그는 이런 비평양상이 군소 출판사도 닮아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이런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표절 가능성은 상존하고 은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형출판사와 문학잡지가 한국문학 생태계를 불평등 구조로 만들고 있다며 질타했다. 더욱이 이들은 그 시스템안에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나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며, 작가가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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