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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배우 김승욱 “부인, 아들, 며느리도 배우…삶이 전투예요”
누구의 인생이나 한편의 연극이 될 수 있다. 실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은 아주 자극적이지 않아도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이 있다.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그런 작품이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의 민준호 대표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겪은 일들을 극본으로 썼다. 수필처럼 담담한 이 극본은 30년 연기 내공의 배우 김승욱과 간다 단원들의 연기로 살아나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해를 품은 달’, ‘정도전’ 등에 이어 최근 ‘화정’에서 활약 중인 김승욱(52)은 ‘나와 할아버지’에서 무뚝뚝한 할아버지로 분한다. 지난 16일 공연이 끝난 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승욱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스토리피]

▶30년만에 듣는 할아버지 이야기=“극중 할아버지가 아내 병문안을 가서 침대를 발로 차며 ‘나 왔어’ 하는 장면은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줘요. 외적인 표현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은 상반되죠.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거의 손자와 눈을 안 맞춰요. 그러다 어느 순간 친해지면서 눈을 맞추게 되죠. 화가 나면 화부터 내고 제멋대로지만 알고보면 마음속에는 깊은 사랑이 있는 거예요”

극중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옛사랑을 찾으러 춘천으로 향한다. 손자는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30년만에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게 된다.

“이 작품을 하면서 손주에게 언젠가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관객들도 잊고 있던 내 가족을 떠올리면서 공감하는 것 같아요”

▶한집에 배우만 네명=김승욱은 1985년 서울예대 졸업 후 극단 목화를 시작으로 연우무대, 학전, 차이무 등 전설적인 극단을 거쳤다. 그는 간다 단원들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지만 “간다팀에 다리 하나 걸치고 같이 놀고 있다”며 웃었다.

“처음에 목화에 입단했는데 오태석 선생님의 작품 세계가 너무 어려웠어요. 연극 때려치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뽀이(웨이터) 생활을 몇 달 했어요. 그러다 엉덩이가 근지근질해서 다시 서울에 올라와 이상우 선생님을 만났죠. 그리고 ‘칠수와 만수’에 참여하게 됐어요”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는 다시 무대를 떠났다. 아내와 함께 해운대 근처에 치킨집을 열었다.

“숨통이 트일 정도만 돈을 벌고 오자는 생각이었어요. ‘내가 배운 걸로 먹고산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으니까요. 치킨집 셔터를 마지막으로 내리던 날 아르바이트생 8명과 거제도로 여행을 갔어요. 후련하게 여행하고 집을 사서 서울로 올라왔죠”

김승욱은 서울예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의 마당극을 보고 “여기가 내가 제일 행복할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후에 어렵거나 돈 생각나면 ‘닭 계속 구울 걸’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 무대에 서면 또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김승욱의 부인은 과선배였던 배우 신혜경이다. 어릴 때부터 극장이 놀이터이자 어린이집이었던 아들 김의건씨도 배우가 됐다.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딸도 연극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그는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작은 연못’에 아들, 딸과 함께 출연했다. 신혜경씨는 당시 아역배우 십여명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아들이 어릴 때 매일 보고 듣는 것이 학전의 ‘지하철 1호선’ 음악이고 춤이었어요. 이모, 삼촌들이 맨날 웃고 떠들고 밤새 술마시며 작품 이야기하다가 공연이 없는 날엔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아보였나봐요. ‘작은 연못’ 촬영하면서 두세달 같이 다닌 것도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추억이예요”

지난달 김의건씨는 연극 ‘극적인 하룻밤’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설희와 결혼했다. 부인에 아들, 며느리까지 배우 네명이 한집에 모여살고 있다.

“며느리라는 단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그냥 우리집에 연기하는 후배 하나가 들어와 사는 것 같아요. (배우 집안의) 삶은 전투예요. 우리는 3개월 후에 다들 아무 일이 없어서 굶을지도 몰라요. (웃음) 하지만 비비닥거리며 살다보면 방법이 생기지 않겠어요”

▶연기생활 30년…마음은 청년=TV드라마와 연극에서 수많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이제 50대가 된 대한민국 386세대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50대는 뭔가 성취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것은 없고 ‘나는 뭘 해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라고 고민에 빠질 때예요. 50대 남성이 가진 아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공연 첫날 즐거운 긴장감을 즐기고, 10살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아직은 청년”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배우 김승욱. 나중에 손주가 ‘나와 할아버지’의 손자처럼 할아버지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할아버지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평생 배운 걸로 먹고 살았다. 보람있었다. 그 정도 얘기 밖에 더 있겠어요?”

신수정 기자/ssj@hera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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