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책]하느님이 사라졌다...민병문 장편소설 ‘천국 쿠데타’
“천국에서 하느님이 잠적했다”

전직 언론인 출신으로 늦깍이 데뷔한 민병문(76) 시인이 최근 펴낸 장편소설 ‘천국의 쿠데타’(전2권ㆍ행복에너지)는 도발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하늘나라의 정권쟁탈과 하느님 실종 사건이라니, 그가 펼쳐낼 상상의 세계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스케일이 만만치 않다. 주요 인물만 30여명에 이른다. 신ㆍ구약 성서의 역사적 인물을 비롯, 세기의 과학자, 한국 기독교의 계보에 오르는 인물 등이 총 망라됐다. 공간적 배경도 하늘나라를 포함한 우주와 지구를 오가는 광대한 세계다.

작가의 천국 발상은 인간의 삶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희노애락도 있고 권력다툼도 있다. 단테가 ‘신곡’에서 탁월하게 그려낸 천국과 연옥, 지옥과는 또 다른 세계다.

그가 그려내는 천국은 대단히 인간적이다. 수천년 인간의 영혼이 모인 곳이다 보니 다스릴 정부 기구가 상정된다. 그렇다고 상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광활한 우주 관리와 지구인간의 사후 천국 및 지옥행을 통제할 각종 교통수단도 제시된다. 판타지이지만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사진설명=“이 소설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 20%, 픽션이 80%쯤 된다. 성경 속 인물과 우리 순교자의 천국 지도층 등장, 천국군 대 지옥군의 숨가쁜 대결 묘사 등은 순전한 소설적 가설이다. 성경교리관 해석과 관련 인물들 배치도 마찬가지다.“(‘천국의 쿠데타’ 서문에서)

소설은 하느님의 잠적에 총리 야고보의 불안으로 시작된다. 주님 부활 승천 이후 200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해온 그에게 하느님이 일언반구 없이 출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서실장 실라, 하늘궁전 총괄실장 마테오, 중앙정보부의 바르나바 역시 아는 게 없다. 베드로 원로원 의장, 바오로 감사원장 등에게 하느님의 부재 사실을 알리며 결재서류를 살피던 야고보 총리의 눈이 ‘영계인간 선정과 과제’라는 자료에 꽂힌다. 안건의 발의자는 한국 출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정보위원장. ‘영계인간 선정’ 내용은 한마디로 기발하다. 지구인간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일정기간 천국과 지옥을 구경시킨 뒤 지구로 돌려보내 부흥회나 저서 발간 등으로 하늘나라 실재를 홍보한다는 것이다. 과거 성공 사례도 붙어있다.

야고보 총리는 그의 산뜻한 발상에 놀라며, 정약종이 죽어 천국에 왔을 때 하느님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걸 기억해낸다.

하느님의 요즘 고민은 천국 주민 수 확보다. 지옥은 초만원인데 천국은 제자리다. 행정부의 매너리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때 하느님의 수행에 비서 김대건 안드레아가 합류했다는 정보가 들어온다. 김 안드레아는 최근 연옥 관리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연옥을 총체적으로 개편, 천국에 많이 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특명을 받은 것이다.

또 다른 결재 자료는 ‘천국 입국 심사의 공정성’과 관련된 감사원의 조사 요청건. 최근 무자격자가 자료조작과 심사부실로 천국에 들어오는 일이 생기면서 감사원이 문제삼고 있는 사안이다.

소설의 다른 축은 지구인간 최동혁 신부 중심으로 흘러간다. 스타 강의 신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 신부의 수호천사가 어느 날 그를 찾아와 지구와 천국에 걸친 비리사건 조사를 의뢰한다. 한국의 대형교회 불량 성직자가 입국 비리 사건의 중심 인물이라는 것.

소설은 40여년 정론직필에 몸담아온 언론인으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예리한 눈, 통합적 사고가 집약돼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늘나라를 설득력있게 그려놓는다. 천국이란 그저 근심, 걱정 없고 빛과 꽃, 향기만이 가득한 곳일까. 천국 주민 수가 줄어 적막강산이라면 아무리 좋아도 즐거울까? 하느님이 지구인간을 걱정하신다면 천국인들도 의당 하느님의 마음과 같아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경륜이 빛을 발하는 천국 입국 비리사건을 포함해 한국 기독교역사 및 과학적 지식까지 소설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다차원 우주, 웜홀 등 과학적 지식을 넘나들며 ‘영속’(영혼의 속도) ‘날쌘 틀‘(천국고유 승용차) 등 발랄한 아이디어까지 더해 SF 맛까지 즐길 수 있다. 그 만이 쓸 수 있는 역작으로 하늘나라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