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트럼펫으로‘경영 화음’넣는 천년홍삼 CEO 김준기
음악으로 삶·직장 조율하는 김준기 KGC인삼공사 사장…“작은 불협화음도 놓치지않고‘합’맞춰 글로벌 건강기업 키우겠다”
지난 2011년 식품업계에는 ‘매출 1조 클럽’에 새로운 회사가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감의 주인공은 KGC인삼공사였다. 당시 인삼공사는 전체 식품업계가 글로벌 원부자재가격 상승과 정부의 가격억제 정책으로 주춤거리는 와중에도 역대 최고치인 9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부가가치 홍삼제품군의 지속적인 매출 성장과 수출 증가에 따른 뿌리삼 매출 비중이 대폭 증가한 것이 동력이 됐다.

하지만 인삼공사는 1조 클럽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듬해 매출은 83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00억원 줄어들었고, 2013년에는 500억원이 더 줄어 78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너도나도 홍삼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이 격화된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2007년 정관장 제품은 국내 홍삼시장에서 점유율이 90%에 육박했지만, 65% 수준으로까지 내려갔다. 위기의 신호가 감지됐다. 100년 전통의 홍삼 기술로 한국을 넘어 세계의 홍삼 시장을 이끈다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김준기 사장에게 음악은 삶이자 경영이다. 젊은날 방황의 종료 음(音)을 음악에서 찾은 그다. 그에겐 인생도, 경영도, 사랑도 음악이다. 김 사장은 음악에서 하모니가 중요하듯이 경영도 모든 사람들의 조화로운 합(合)을 통해 이뤄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김준기 KGC 인삼공사 사장이 정관장 브랜드 로고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그랬던 인삼공사가 지난해부터 달라지고 있다. 인삼공사는 지난해 2년간의 매출 축소를 딛고 812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더 나아져 지난해보다 110~120% 나아진 실적을 보이고 있다.

호실적을 견인한 이는 김준기 대표이사다. 그는 화음을 ‘경영’에 넣는 경영자로 통한다. 젊은날의 방황을 하지 않았던 이가 누가 있겠는가. 다만 김 대표는 성장통을 누구보다 심하게 앓았고, 그것을 멋지게 탈출했다. 음악을 만났고, 교회를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음악과 믿음은 그의 경영을 지탱하는 큰 줄기가 돼왔다.

지난해 2월 인삼공사의 새 사령탑에 앉아 1년 이상 회사를 진두지휘해온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을 들어봤다.

▶음악으로 이겨낸 어린 시절의 방황=“전 평범해요.” 그의 첫마디다. 그리 내세울 게 없다는 겸손이다.

하지만 젊은날의 드라마틱한, 숨은 경력은 전혀 평범치는 않다.

김 대표의 겉으로 드러난 이력은 특이하다 할만한 것이 없다. 스물여섯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1982년 전매청으로 배정받은 뒤, 꾸준한 승진을 거쳐 KT&G의 자회사인 인삼공사의 대표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30여년은 그의 말처럼 평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정고시를 치르지도 않은 하위직 공무원이 그 자리에 앉기까지 밟아온 이력에는 단단한 무엇인가가 응축돼 있었다.

특히 방황했던 유년ㆍ청소년 시절은 김 대표의 내면에 모종의 끈기와 열정을 심어줬다. 6살 때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여읜 후로 가뜩이나 사정이 좋지 않았던 가세가 더욱 기울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먹고 살기가 막막하던 차에 외가 친척들이 “차라리 서울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며 어머니를 서울로 데리고 올라가면서부터, 그는 일찍이 세상에 눈을 떴다.

“14살 터울의 누나가 시집을 간 상태였는데 그 집에 들어갔어요. 굶기 싫어서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했죠.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늦가을에는 감 팔고, 겨울에는 쓰레기 리어카 밀어주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누나네도 형편이 좋지 않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가정부로 더부살이를 하는 집으로 옮겨갔다. 다행히 어머니의 임금 대신 학비를 지원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맘은 편치 않았다. 자연히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지금도 사모곡(思母曲)에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그때 좀더 의연하게 행동할 걸”하는 후회와도 연결돼 있다.

그런 그에게 음악은 힘든 청소년기를 버틸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김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다니면서부터는 밴드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됐다. 재능도 꽤 있어 트럼펫 외에도 드럼, 기타 등을 다룰 수 있게 됐고, 관악합주곡을 편곡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YMCA에 들어가서 음악을 계속했지만, 돈을 벌 수가 없으니까 지금으로 치자면 라이브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연주를 하고 하루에 500원씩 벌어서 생계를 이었죠.”

▶전매청에서 시작된 인생의 2막=이후 잠깐 코리아제록스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 그만둔 그는 ‘이대로 살다가는 어머니께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겠구나’ 싶어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전매청에 들어가 인생 2막을 펼치게 된다.

전매청에 갓 입사한 그를 맞이한 것은 고시출신의 사무관 선배였다. 입사 후 한동안 김 대표에게 일은 시키지 않고 조달물자관리규정, 인사관리규정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다그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준, 고마운 이다.

“한달여간 보고서나 작성하고 있는데, 어느날 선배가 그러더라구요. ‘절대 때묻지 말아라.’”

사실 넉넉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을 갖게 된 김 대표에게 전매청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일 수 있었다. 업체 관계자들과 모임도 잦고, 당시 공직사회의 분위기 상 금전적 유혹이 도처에서 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선배의 조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그러한 유혹들을 끝끝내 이겨내 현재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진흙탕에 한쪽발이 빠지면 얼른 발을 빼면 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두 발 모두 빠지게 되고 결국엔 양심마저 마비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혹을 아예 뿌리쳤죠. 결벽증이 있다고 후배들이 놀리기도 하지만요.”

지난해부터 인삼공사의 광고에 쓰인 ‘지름길은 없습니다. 바른길로 갑니다’라는 문구는 다름 아닌 김 대표의 신념과직결된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도덕성이 중요시되는 건강기능식품 회사의 대표로서의 마땅한 자세라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이다.

▶음악이 준 교훈 ‘조화’… 그 힘으로 영업 현장을 바꾸다=좋아하던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음악은 늘 김 대표에게 직장 생활에 관한 중대한 깨달음을 안겨줬다. 바로 ‘조화’라는 가치다. 김 대표는 평소 직원들에게 ‘PㆍBㆍC’를 강조하는데 ‘프로(Pro) 의식이 있는지, 남에게 팔 만한 브랜드(Brand)인지, 콘덕터(Conductorㆍ지휘자)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콘덕터에 대한 김 대표의 철학은 남다른다.

“모든 악기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데, 합(合)이 맞지 않으면 음악이 되지 않아요. 조직도 마찬가지죠. 조직원들 합이 맞아야 업무가 잘 굴러가게 되는 거예요. 콘덕터는 불협화음도 들어야 하고 박자가 조금 틀린 것도 찾아내야 하고 화음도 맞춰야 해요. 작은 소리도 놓치면 안되는 거죠.”

그는 KT&G 영업본부장으로 있었을 때 이같은 콘덕터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KT&G 지방조직들을 전전하다가 서울로 2010년 불려왔을 당시 KT&G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60% 이상을 유지하던 시장 점유율이 50%대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장 영업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영업은 롤모델 조직이예요. 최고의 영업 사례를 롤모델로 주고 그대로 하라고 하면 실적이 나오죠. 그래서 전국에서 일깨나 잘한다는 본부장, 지사장, 지점장, 본사 부장을 모아서 호텔방에 가둬놓고 최고의 영업 비법을 정리하라고 했죠.”

효과는 즉각 나타나서 1년 뒤에는 점유율이 60%대를 회복할 수 있었다. 특히 체계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던 영업을 체계화하기 위해 13만개 소매점을 일일이 분류해 매출, 점유율, 상권, 성장성 등으로 코드화하고 이를 전국에 돌아다니면서 퍼뜨린 것 역시 그의 콘덕터로서의 역량을 여실히 입증한 사례다.

▶‘글로벌 종합건강기업’을 향해=그럼에도 김 대표가 인삼공사 대표에 오를 당시에는 인삼 전문가가 아닌 것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인삼공사 사외이사를 잠깐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담배 쪽 이력에 무게가 쏠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 대표는 “담배는 영업이지만, 홍삼은 철저하게 마케팅”이라며 인삼공사의 문제점은 그간 이렇다할 마케팅이 없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삼공사 올해 목표가 9000억원인데, 제대로 했으면 2조 이상은 하고 있어야 해요. 국내에서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키운 것이 정관장인데 우리가 25%밖에 점유하고 있지 못하거든요. 마케팅을 제대로 하면 그 답이 나와요. 지금 인삼공사 브랜드가 200가지가 넘는데, 소비자들이 아는 것은 몇개 되지 않잖아요.”

인삼공사는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는 배우 안성기 씨를 모델로 한 광고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또 할인 같은 고전적인 마케팅보다는 체험형 마케팅을 통해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당장 이번 가정의달에도 단순한 할인보다는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 이슈마다 어울리는 데이(DAY) 마케팅 활동을 준비했고, 고객들이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가족에게 영상편지를 보낸다든지, 사랑의 카드를 작성한다든지 하는 이벤트도 마련한 것이다. 고객에게 소비의 가치를 부여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출 확대를 위해서 반드시 공략해야 할 해외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미국 시장은 현재 전년대비 20%씩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동양인들 중심으로 하던 판매에서 지금은 뉴욕에 정관장 매장과 홍삼카페를 오픈하는 등 현지인들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해외시장인 중국의 경우에도 뿌리삼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소비 습성을 넘어 가공제품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같은 국내외 마케팅을 바탕으로 정관장을 향후 ‘글로벌 종합건강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목표다.

그 뜻은 마지막 말에 응축돼 있다. “정관장이 홍삼사업을 전개한지는 올해로 116년이 되었지만, 우리 선조들이 홍삼을 제조한 역사는 무려 천년이 넘습니다. 정관장은 인삼종주기업의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의 홍삼을 전세계인들에게 전파하고자 합니다. 또 고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완성’이라는 업(業)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꾸준히 고객이 원하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우수한 홍삼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해 나갈 계획입니다.”

정리=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