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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23. 아빠마인드의 인도아저씨 ‘여행자의 행운’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깐야꾸마리를 떠난다. 인도대륙의 남쪽 이 작은 마을에 과연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기차에 오른다. 오전 10시30분 출발, 오후 5시30분 도착인 이 기차는 코치(Cochi)를 향해 간다. 깐야꾸마리가 최남단에 있다 보니 이동시간이 제법 걸린다. 기차도 역시 3A를 타서 쾌적하긴 하지만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깐야꾸마리가 시발역인 탓에 승객도 별로 없는데 마침 옆 칸에 한국인 남자가 두 명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해보지만 반응이 좀 미지근하다. “아” “예”가 끝이다. 괜히 말시켰나 싶은 게 기분이 별로다. 이국의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정도는 나눠도 될 텐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툴툴거리며 동행과 깐야꾸마리 과일가게에서 사온 바나나와 석류를 까서 먹는다. 바로 그때 옆 자리에 캐리어를 밀고 들어온 배가 볼록 나온 콧수염 인도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건다.

중국인이 오너인 글로벌 여성용품 회사의 컨설턴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저씨의 이름은 모한이다. 모한 아저씨는 기차에서 처음 본 우리에게 자기의 회사와 직업을 설명한다. 그의 회사는 화장품, 속옷, 생리대 등 여성이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제조하고 파는 회사다. 피부빛과 혈관의 색을 보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고 팔을 내밀어 보라고도 한다. 그것도 부족해서 노트북을 꺼내 회사 홈페이지를 보여주고 급기야 한국의 제휴회사 홈페이지까지 알려준다.

인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상품을 소개하고 상담하는 모한 아저씨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인도의 대도시를 돌며 일하고 때때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나라로 출장을 간다고 한다. 지금은 첸나이에서 깐야꾸마리로 와서 일하고 다시 코치로 가는 중이다. 코치는 그가 현재 사는 도시지만 아내도 이 일을 해서 지금 첸나이에 가 있고 딸은 대학생이라 집에 없어서 집으로는 가지 않는다. 호텔에서 자고 내일 일한 다음 다시 첸나이로 가야하는 바쁜 스케줄의 소유자다. 적극적이고 이야기 좋아하는 모한 아저씨 덕분에 즉석에서 페이스북 친구까지 하게 됐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동행은 자고 싶다고 이층의 자기 침대로 올라간다. 나도 슬슬 이 아저씨가 좀 피곤해진다. 너무 자기자랑만 하는 것 같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저씨의 눈길을 무시하고 한잠 자야겠다고 이야기를 멈춘다.


졸다가 깨다가 창밖을 보다가 음악 듣다가 가이드북 보다가 드디어 코치의 에르나꿀람(ernakulam) 역에 도착한다. 그 사이 사람들로 가득찼던 객차에서 한참을 줄서서 역에 발을 디딘다. 숙소가 많은 에르나꿀람 시가지로 가야한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거대한 도시의 기차역 앞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토릭샤를 타야하는데 줄도 길고 사람도 많고 막막하다. 이런 느낌을 헤쳐 가는 것이 여행이지만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니다.

바로 이 때다. 뒤에서 모한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캐리어를 밀고 서류가방을 들고 다가온다. 포트코친으로 가서 숙소를 찾아야 한다고 하자 걱정스런 얼굴을 한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다음 주 화요일부터 열리는 축제 때문에 호텔 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캐리어와 가방을 우리에게 맡기고는 사라진다. 잠시 후 프리페이드 오토릭샤 부스에서 그가 손짓을 한다. 오토릭샤를 잡아놓고는 우리보고 자기 짐을 가지고 오라는 거다. 영문도 모르고 배낭을 들쳐 메고 그의 짐을 밀며 갔더니 이렇게 말한다.


“난 이미 호텔을 예약했어. 그런데 거긴 4성급 호텔이라 너희에겐 너무 비싸. 릭샤를 함께 타고 가자. 내 호텔에 가는 길에 숙소를 알아봐 줄게”

오! 해는 지고 축제기간이라 방이 없을 까봐 막막한데 이렇게 친절한 인도인 아저씨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숙소에 어느 정도의 가격을 예상하느냐 묻고는 숙소를 찾아준다. 처음 갔던 호텔은 괜찮았지만 빈 방이 없었다. 거기서 소개해준 그 뒤편의 다른 호텔에 머물기로 한다. 릭샤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우리를 데리고 내려서 방을 물어보고 다시 릭샤를 타고 다시 내린 호텔에 빈 방이 있다는 걸 확인하자 굳이 룸 상태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수고를 모한아저씨는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1시간 후에 식사를 하자고 저녁약속까지 잡고는 기다리는 릭샤를 타고 자기 호텔로 간다.

정확히 1시간후 그는 다시 우리 호텔로 온다. 코치에서 꼭 해야할 수로유람(Backwater tour)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오늘 호텔에서 예약해야 한다. 프런트의 인도인 주인과 그 얘기를 하며 반나절 프로그램을 할까, 아니면 하루종일 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들어온다. 눈짓을 하며 방으로 올라가자 하더니 종일프로그램은 상관없는 코끼리 투어를 포함해서 괜히 비싸니까 반일투어만 하라는 거다. 이 아저씨, 약간은 일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꼼꼼하게 일처리를 해주는 모습이 꼭 아빠나 삼촌의 마인드다. 하하.

다시 프런트로 내려와서는 굳이 본인이 숙소 주인과 이야기 하면서 이것저것 체크한다. 주인은 왜 인도 아저씨가 한국여자들을 챙기는지 어리둥절한 눈치다. 어리둥절한 건 솔직히 우리도 마찬가지다.

야경이 아름답다며 걸을 수 있는 거리의 해변으로 데리고 간다. 코치는 대도시이고 예전에는 향신료 항구, 식민지배 이후에도 무역항으로 유명한 도시다. 포트코친은 코치의 네 구역 중에서 항구가 있는 신도시 쪽이라 쇼핑몰과 전망 좋은 아파트까지 어우러진 해변경치는 대도시의 그것이다.

하나뿐인 딸이 어릴 때에는 이곳에 산책도 자주 왔다며 바빠서 이젠 그것도 못한다며 쓸쓸히 웃는 아저씨의 얼굴이 우리나라 여느 가장의 그것과 닮아있다.


밤의 항구를 구경하고 토박이인 그가 알려준 대로 대략의 지리도 좀 익힌다. 그가 추천한 ‘Indian Coffee House’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름은 커피 하우스지만 현지인이 많이 오는 큰 식당이다. 도사(Dosa)라는 인도 음식과 라임쥬스까지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마치 사설 가이드 같다고 하니까 귀여운 콧수염을 흔들고 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다. 길 모르는 우리를 다시 숙소까지 데려다주고는 내일 자신의 일이 끝나고 4시에 올 테니 수로유람 다녀오면 우리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빙그레 웃으면서도 약속은 일방적으로 잡는 친절한 단호함이 고마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호텔에 돌아와 커다란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눕는다. 눅눅한 바람이 불어도 기분은 좋다. 유쾌한 아빠마인드 모한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어둑해진 코치의 뒷골목을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메고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을 일컬어 행운의 날이라고 하는 거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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