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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영복, 강상중 교수의 고전에서 얻은 지혜
20년은 감옥에서, 이후 25년은 강단에서 지내온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20년 감옥생활을 ‘나의 대학시절’이라 부른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20년 ‘대학’에서 배운 걸 그는 25년간 강단에서 잘 써먹은 셈이다.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 강의를 시작해 25년간 대학 강의를 해온 신 교수가 지난해 겨울 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내려왔다. 재치와 유머, 공감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은 그의 강의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대신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담론’(돌베개)은 학생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녹취한 강의를 밑바탕으로 신 교수의 ‘강의노트 2014-2’를 정리해 역은 것이다 .

담론/신영복 지음/돌베개

신 교수의 강의는 ‘시경’(詩經)에서 시작한다. 시를 첫 시간에 다루는 이유를 그는 인식틀을 깨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시는 상투성을 벗어난 언어로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시경’의 만리장성 축조와 관련된 맹강녀 전설과 감옥에서 만난 한 노인 재소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실과 진실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들려준다. 감옥에 신입자가 들어오는 첫날이면 이 노인은 어김없이 신입자를 불러 옆에 앉히고 자신의 긴 인생사를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매번 각색된다. 창피한 건 빼고 무용담은 부풀려 멋지게 만드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 노인을 온당하게 이해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제소자라는 삶이 아닌, 소망과 반성이 있는 진실의 주인공으로 그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주역‘은 이 강의의 화두인 ‘관계론’으로 들어간다. 사람을 온전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인식하지 말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 그 사람을 놓아야 한다는 것. 신 교수는 동베를린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고암 이응노 선생의 감옥 에피소드를 전한다. 재소자를 수번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며, ‘응일’이라는 이름의 재소자에게 “뉘 집 큰 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이라 했다는 일화다. 인격적인 말이 관계를 바꿔놓는 것이다.

마음의 힘/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

그는 ‘논어’의 ‘화동(和同)담론’을 통일담론으로 펼쳐가며 통일을 경제논리가 아닌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 ‘화(和)’로 설명해 나간다. ‘맹자’에서는 ‘곡속장’의 예화가 등장한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그 소가 불쌍해서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일화다. 바꾼 이유는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보고 만난다는 것은 관계의 핵심. 저자는 우리 사회의 만남이 없는 실상을 조목조목 든다.

2004년에 출간된 ‘강의’ 이후 10년만에 나온 이 책은 ‘시경’과 ‘주역’, ‘논어’ 등 동양 고전을 현재의 우리 삶에 비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계 인식의 틀을 새롭게 펼쳤다. 나와 세계, 아픔과 기쁨,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자기개조와 연대, 변화와 창조 등 그의 강의의 모든 담론은 ‘관계’로 귀결된다.

‘고민하는 힘’으로 일본의 백만독자, 한국의 청춘들에게 큰 울림을 안긴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의 ‘마음의 힘’(사계절)은 100년 전에 쓰인 두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실마리 삶아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굳건히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남과 다른 삶의 아픔을 경험했던 두 학자가 살아가는 게 힘든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 건널 수 있을지 깊은 통찰에서 얻은 지혜를 우리에게 남겼다.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담론’과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에서 숨겨진 삶의 비의를 찾아내는 건 독자의 몫이다.

‘마음’과 ‘마의 산’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었던 책. 소세키의 ‘마음’은 20세기 초엽 메이지라는 새로운 시대와 함께 서구식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강한 자의식 때문에 정신적 병을 얻은 사람들, 사회흐름으로부터 방치된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낸 작품이다. ‘마의 산’은 주인공이 스위스 다보스의 결핵 요양소에서 7년간 머물며 접하는 다양한 국적과 성격의 사람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유럽의 사상과 분위기,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시대와 마음의 관계를 담아냈다. 저자는 이 두 작품이 그려낸 이른바 ‘마음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의 마음’에 비추어 오늘날 병든 사회의 깊숙한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 그는 “나쓰메 소세키나 토마스 만이 ‘위태로운 마음’을 발견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의 마음은 막다른 궁지에 몰려있는 것같다”며 살기 힘들어진 본질적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가치관이 획일화되면서 대안에 대해 사고할 수 없게 된 점을 든다. 그는 복수의 선택지를 상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느냐하는 게 마음의 풍요로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둘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가 약해져 위기에 처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새로운 발상을 하는 힘이 약해져 도대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든다.

그는 대안으로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모라토리엄’을 스스로 가지라고 권한다. 또 ‘마음’의 주인공이 스승의 죽음을 글로 전하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얘기를 전함으로써 병든 시대를 살아갈 ‘마음의 힘’을 키우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방황과 고뇌의 삶에 지렛대가 돼 준 두 고전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더해 더 풍성한 지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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