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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국민시인, 다나카와 슌타로 “애인 찾듯 좋아하는 시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를 음식처럼 맛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닌 다른 차원의 감동을 시에서 느꼈으면 합니다.”

시선집 ‘사과에 대한 고집’(비채)의 국내 출간과 함께 22일 방한한 다나카와 슌타로 시인은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기자들과 만나 직설적이고 유쾌한 비유로 시력(詩歷)의 축약판인 이번 시집과 시인의 역할에 대해 얘기했다.

시인은 1931년 도쿄 태생으로 시력만으로도 환갑을 넘겼다. 수천편의 시를 썼고 100여권의 시집이 나왔다. 그 여정 중 최대 히트작이라면 아무래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꼽을 만하다. 21살이던 1952년 일본 시단을 뒤집어놓은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의 표제시다.

“인류는 작은 공 위에서/자고 일어나고 또 일도 하면서/가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한다//화성인들이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어쩌면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을지도)/하지만 가끔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할 것이다/그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만유 인력은/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중략)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나는 무심코 재채기를 했다”(‘이십억 광년의 고독’)

우주적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존재론적 고민을 재채기로 날려버리는 5차원적 감각이 놀랍고 유머러스한 이 시는 국내에도 좋아하는 독자들이 꽤 있다.

시의 역할과 관련한 오랜 담론인 효용과 쾌락에 비춰볼 때 그의 시는 후자를 지향한다.

“시가 이해되기보다 즐거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통해서 뭘 전달하겠다는 생각이 없고 지금까지 테마를 생각하고 시를 적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60여년 시력을 돌아볼 때 한가지 집착한 주제는 있는 것 같다며, “인간 사회 속의 개인이 아닌, 우주 속에 살아있는 자신으로서의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집착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집은 등단 이후 최근 발표작 중에서 시 46편과 산문 8편을 담은 시선집으로 비교적 재미있는 현대적인 느낌의 시들을 모았다.

“내가 그저께 죽었는데도/세계는 망할 기미조차 없다/중의 가사가 겨울 햇살에 반짝이며/이웃집 초등학교 5학년 녀석은 내 PC로 놀고 있다/어, 선향 냄새가 이렇게 좋았나//나는 그저께 죽었으니/이제 오늘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덕택에 의미가 아닌 것을 잘 알 것 같다/좀 더 집요하게 만질 걸/그 사람의 장딴지를”(‘장딴지’)

“언어의 벽은 있지만 전 세계 시인들은 뭔가 공통점이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정치나 경제와는 다른 어떤 귀중한 영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에 소개되는 자신의 시집이 친근하게 다가가길 기대했다. 좋은 시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좋은 시로 읽힐 것이라는 것.

올해 초 신경림 시인과 한 대시(對詩)를 엮은 ‘모두 별이 되어 내몸에 들어왔다’를 펴낸 그는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관계가 아닌 ‘시의 관계’에서 가깝게 지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일본 정치인과 얘기하기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신경림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언어의 벽은 있지만 전 세계 시인들은 뭔가 공통점이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정치나 경제와는 다른 어떤 귀중한 영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시의 영역의 중요성을 내비쳤다.

슌타로 시인은 한국시인 중에 신경림 시인 외에 김지하, 류시화 등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김지하 시인의 경우 시도 좋아하지만 살아가면서 시와 삶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게 좋다”고 느낌을 전했다.

슌타로 시인은 일본과 한국 시를 정치적, 사회적, 언어적 차이에서 비교하기도 했다.

“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시가 인기가 있었지만 일본은 그런 상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체제 비판을 하는 극소수의 시인이 있지만 일본 독자들이 그런 시를 잘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일본어도 그런 반체제 시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대시가 난해해지면서 독자들과 멀어진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몇년 전 시바타 토요 할머니의 시집 ‘약해지지마’가 일본에서 200만부 팔려 화제가 됐던 일을 회고하며, “오랜 세월 인생의 경험이 있는 할머니의 시가 나쁘진 않았다”며, 그래도 시집이 200만부까지 팔린 건 좀 억울한 느낌은 있었다”고 우스개소리처럼 말했다.

그는 현대시가 누구나 읽고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일반과 동떨어진 데 시인들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작사가인 그로선 할 만한 소리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떻게 시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주제를 역시 가볍게 뚫고 나가는 그 다웠다.

“애인을 찾듯이 좋아하는 시를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얇고 넓게 시작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과에 대한 고집/다나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비채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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