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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식열전> 욕심만 크고, 제물(祭物)은 초라한 대타협 밥상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기원전371년, 제위왕(齊威王) 8년. 초(楚)나라가 제나라에 쳐들어왔다. 제위왕이 현명한 순우곤(淳于髡)을 사자로 조(趙)나라에 보내며 예물로 황금 백 근(斤), 거마 10승(乘)으로 군사를 빌려오라고 한다. 그런데 순우곤은 크게 웃으며 위왕에게 얘기를 하나 들여준다.

“제가 오는 길에 밭 갈던 농사꾼이 제사를 지내더군요. 족발 하나에 술 한 사발을 놓고 ‘높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가득,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 곡식이 잘 익어 우리 집을 풍성하게 하소서’라고 빌더군요. 웃기지 않습니까? 바치는 예물은 적은데 바라는 바는 그리 많으니까요”

제위왕은 바로 황금 1000일(鎰)과 백옥10쌍, 수레 1000승을 더 준다. 순우곤은 이 예물로 조나라에서 군사 10만명과 전차 1000승을 빌려온다. 초나라 군대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철수했다.

거마 10승과 1000승의 차이는 100배, 황금 100근과 1000일의 가치 차이는 약 13.3배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병사 10만 명과 말 1000마리의 목숨을 빌리는 값으로는 후자 쪽이 적당해 보인다.

노사정 대타협이 난항이다. 일각에서는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는 소식도 있지만, 내용을 살피면 꼭 그래 보이지도 않는다. 통상임금, 임금피크제, 임금체계 개편 등 대부분의 난제들이 추후 ‘노사합의’로 미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합의가 어려워 대타협에 나섰는데, 또 도돌이표인 셈이다. 고용유연제에 합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위다. 설령 합의가 이뤄져도 시행을 낙관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계는 이미 정치권에 뿌리가 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이 정치권을 압박한다면 대타협이 이뤄진들 법제화는 어려울 수 있다. 민주노총은 1998년에도 대타협을 깬 전과가 있다. 게다가 현행 국회법 체제에서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영계도 썩 잘하는 모습은 아니다. 아무리 기업의 생존이 중요하다지만, 직장인이라면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임금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는 논의 내용에는 우려가 크다. 그런데 경영계 안에는 직장인들의 우려를 달래줄 뭔가가 부족하다. 판 깨는 노동계도 얄밉지만, 경영계에도 서운하다.

정부도 필사적인 모습이 부족하다. 이른바 정권 ‘실세’들이 직접 나서 노사간 타협을 압박하는 모습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서든‘대타협’만 이끌어내 정치적 성과로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이끌기보다는 끌려가는 모양새다.

큰 걸 얻어내려면 큰 걸 걸어야 한다. 이뤄야 할 일 이라면 필사적이어야 한다. 화식(貨殖)의 원리가 그렇다. 족발 하나 술 한 사발로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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