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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문명의 지속성과 유기농업
노희명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지난 2월7일 한겨울의 샤를드골공항 테제베(TGV)역. 플랫폼의 밤공기는 이방인이 느끼기에 충분히 을씨년스럽도록 차가웠다. 북해 쪽으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북부 플랑드르지방의 작은 도시 뚜루꾸앵(Tourcoing). 그날 밤 촉촉이 내렸던 겨울비는 여행자의 지친 마음을 푹 적셔주기에 충분했다. 낯선 곳에, 낯선 일로 찾아온 토양학자. 그 낯선 곳엔 왜 갔을까? 그 답은 창세 이후 지금까지 묵묵히 지구를 지켜온 토양에 있다. 거기서 원면 목화의 질소동위원소 조성을 분석하여 유기농 면(綿)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 분석법을 섬유분야의 신규규격(NWI)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제안했다. 필자는 유기농산물 인증에서 화학비료의 시용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때마침 의류직물분야 쪽에서도 제품이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낯선 출장길에서 들은 이 소식은 토양탄소관리에 힘써온 필자에게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유기농 면(綿)제품은 GOTS표준에 의해 인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준체계 역시 목화 재배지에서 생산한 원면 목화의 유기농생산 여부는 모른 채, 그 다음 가공단계부터 인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이 기술은 현행 유기농면제품 인증체계에서 밝히지 못하고 있는 부분, 즉 원면 목화가 유기농산물인지 여부를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과 물류, 가공과정의 이력을 추적하는데도 적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인류문명은 지속가능할까? 이는 지난 세기부터 우리가 꾸준히 제기해왔던 근본적인 명제로, 기후변화는 항상 그 화젯거리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전에 비해 대기로 탄소가 훨씬 많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인류의 생활로부터 발생한 많은 양의 탄소는 반드시 토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과정은 안전하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제대로 하는 유기농업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탄소로부터 시작하며, 탄소에 의해 지켜진다. 토양은 대기가 갖고 있는 탄소량의 약 4배를 저장하고 있는데, 이 균형은 우리가 어떻게 탄소를 관리하는가에 따라 기후 변화를 빠르게 하거나 늦추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인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옛날에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영화를 떠올리곤 한다. 인류문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미래의 도시 ‘인더스트리아’에서 살아가는 ‘코난’과 ‘라나’에게 화석연료는 미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는데 꼭 필요했던 하나의 불씨가 아니었나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후손세대를 위해서라도 재활용할 수 있는 유기부산물자원을 제대로 토양으로 돌려보내야 하며, 토양으로 돌아간 탄소는 가급적 오랫동안 토양에 머물러있게 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유기농업을 제대로 실천할 때 맞게 끼워지게 된다.

유기농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탄소격리가치는 제대로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하며, 동시에 유기농제품의 유통과 물류, 가공과정은 모두 소비자에게 투명해야 하고, 끝으로 소비자가 미래에 대한 투자로 유기농제품을 믿고 구입해야 비로소 다양한 가치를 고리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비자는 우리나라 유기농제품(농산물,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 또 가공과정을 믿지 못하기에 구입하기를 꺼려하고 있으며, 생산자는 현재 유기농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증하고 유통과 물류, 가공 과정의 혼입을 막을 수 있는 체계가 없다는데 좌절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치사슬의 양쪽 끝에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버린 것이 아닌가? 이 틈새를 대형 식품회사는 교묘히 수입 유기농제품으로 채우고 있으며, 소비자는 ‘외국은 정직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수입 유기농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가뜩이나 면적이 작은 우리나라의 땅에 수입한 바이오매스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자유무역협정(FTA)시대는 우리에게 더 많은 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하릴없이 세계시장의 논리에 따른 처분만 기다릴 것인가? 그리고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수입유기농제품을 제어할 잣대는 과연 없는 것인가?

유기농 면제품 구분 기술은 적어도 위의 질문에 대해 가능한 답을 줄 수 있다. 유기농 제품에 거는 소비자의 기대는? 또 생산자의 기대는? 아마 소비자는 자기가 구입한 유기농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어서, 유통 가공되었기를 바라겠고, 생산자는 자신이 생산한 유기농제품에 소비자가 제값을 쳐주기를 바랄 것이다. 유기농제품의 생산과 유통가공 이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이를 정당한 가격체계가 이끈다면,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서로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사이에 형성된 신뢰는 탄소가 순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에 탄소감축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번 출장에 신규 규격으로 제안한 핵심기술은 비단 원면 목화뿐만 아니라 다른 농산물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유통 및 물류, 가공과정의 이력을 추적하는데도 적용가능하다. 질소동위원소지표에 의해 이력을 인증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는 믿고 고를 수 있는 기쁨을, 생산자에게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자부심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이 기술로 인해 이번 여름에는 스페인에서 열리는 Euro Food Summit 2015에 초청받았으며, Food Forensic 분과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기후변화로 통칭할 수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은 지금도 보이지 않게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늦출 수 있는 안전하고 과학적인 방법은 바로 토양이 지닌 탄소의 기능과 용량을 활용하는 유기농업이다. 이렇게 대기에 넘쳐나는 탄소를 다시 토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조물주가 보기에 좋았다고 한 토양의 역할을 슬기롭게 잘 활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토양은 ‘자연’이라는 교향악단과 교감하는 지휘자로, 이 위대한 지휘자는 그 거대하고 예민한 손끝을 통해 물질의 흐름을 제어하며 지구의 평균율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미래 어느 때에 이러한 인증법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가 곧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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