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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조범자] 땅콩회항과 크림빵아빠가 말해주는 것
특종에 목말랐던 방송사 PD는 우연히 한 살인사건을 접한다. 평범한 회사 여직원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 공교롭게도 그 회사에 다니던 지인에게 솔깃한 말을 전해 듣는다. “다른 동료 여직원이 며칠째 안보여.” PD는 그를 용의자로 확신한다. 회사 직원들의 인터뷰 내용을 자극적으로 편집해 방송하고, 취재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SNS에 올린다. 행방이 묘연한 여직원이 범인임을 단정지을 만한 것들이다. 네티즌들은 열광한다. 여직원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이름과 고향, 출신학교 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악성 댓글이, 거짓 정보가 온라인에서 춤을 춘다. 사람들은 어느새 진짜 범인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먹잇감을 향해 폭주할 뿐이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인터넷과 SNS의 가벼움과 폭력성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끔찍한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얘기다.

인터넷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두려움도 커진다. 기사에 달린 악성댓글에 많은 이들이 상처받는다.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SNS까지 거들고 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수많은 정보와 진실, 거짓과 가십들을 실어 나른다. 사실 ‘팩트’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와 리트윗 횟수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터넷 공간은 때론 착한 일도 한다. 지난해 말 우리 사회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 접대 매뉴얼을 트집잡아 비행기를 회항시킨 사건이다. 이른바 ‘갑질 논란’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갑질’이란 말은 2013년 대리점 점주들에게 폭언하고 물량 떠넘기기와 갈취를 일삼았던 ‘남양유업 사태’로 온라인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 땅의 약자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갑’의 횡포에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인터넷은 ‘갑질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 네티즌은 “갑질논란의 공론화야말로 인터넷의 가장 큰 순효과”라고 했다.

‘크림빵 아빠’ 사건도 그렇다. 20대 가장이 임신한 아내에게 주려고 크림빵을 사들고 귀가하다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다. 애틋한 사연이 더해진 이 사건은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SNS를 타고 들불처럼 일어났다.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경찰의 CCTV를 분석하며 용의자 차량을 예측했고, 결국 한 시민의 결정적 제보로 사건 발생 19일 만에 용의자가 나타났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지금도 인터넷은 ‘마녀사냥’ 식 악성 댓글이 넘쳐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선 익명의 감시자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사회부조리를 바로잡고 있다. 똑같은 공간이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선한 양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2015년이 청양의 해라고 하니, 올해는 인터넷 세상이 양처럼 순하고 건강한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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