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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동희]공소시효,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흉악범에 대한 공소시효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최근 대구 황산테러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이 계기다. 황산테러사건은 1999년 5월 20일 대구에 살던 김태완 군(당시 6세)이 한 남성이 뿌린 황산으로 얼굴 등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49일간 투병하다가 끝내 숨진 사건이다.

김 군 부모는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사흘 앞둔 지난해 7월 4일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으로 범인으로 지목했던 사람에 대한 공소시효는 일단 정지되었지만, 결국 법원이 재정신청을 기각해 영구미제로 될 상황이다. 대법원에 낸 재항고까지 최종 기각되면 이제 진범임을 입증할 증거가 나와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사실 다른 진범이 있다면 이미 작년 7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했지만 개정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 대하여는 종전의 규정대로 15년을 적용하도록 했었다.

공소시효를 왜 두는지 법에는 설명이 없다. 해석상 몇 가지 근거가 제시될 뿐이다. 시간의 경과로 사회의 처벌감정이 없어지거나 약화되었다는 게 한 근거다. 증거가 흩어지거나 변질되어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점이나 미제사건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흉악범 등 중대범죄의 경우에는 이에 대한 반론이 설득적이다. 시간이 지나도 유족이나 일반인의 처벌감정이 없어지거나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증거는 이미 충분히 확보된 경우가 있고, 특히 유전자감정 등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증거물 장기보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일선경찰에서는 오히려 공소시효가 미제사건 해결을 가로막는다는 말도 한다.

연혁적으로는 19세기 프랑스법을 받아들인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된 제도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영국처럼 공소시효 자체가 없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연방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등은 공소시효를 배제시키고 있다. 성범죄는 범인 미검거라도 DNA에 인격을 부여하여 이를 기소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게 했다. 독일은 중한 살인의 공소시효는 30년이고 유희적 살인 등 특정유형은 공소시효가 배제된다. 일본도 2010년에 공소시효 기간을 늘이고 살인죄, 강도살인죄 등 사형이 포함된 12개 중범죄는 공소시효를 없앴다. 또 개정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도 공소시효 폐지가 적용되도록 했다. 범죄피해자 유족모임이 주도한 입법청원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실은 우리나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폐지된 범죄가 있다. 국제조약에 따라 전쟁범죄와 학살범죄는 공소시효가 배제되고, 아동이나 장애인 대상 성범죄도 그렇다. 상상해본다. 만약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진다면, 그런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묵묵히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인간성을 거스르는 중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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