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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현대판 노예
“납치한 사람을 만난다면 뭐라 말하실 거예요?”

“나를 납치한 사람이나 고문한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무릎 꿇고 그의 손에 키스하겠습니다.”

수단의 수호성녀 바키타(1869-1947) 수녀가 한 학생의 질문에 답한 이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바키타는 본명이 아니다. 수단의 추장가의 딸로 태어난 바키타는 9살에 아랍 노예상에게 납치돼 다섯 번이나 팔리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본명마저 잊고 만다. 온갖 고문과 학대 속에서 그녀를 가장 공포에 떨게 한 건 몸에 새기는 표식이었다. 살을 파고 소금을 상처에 뿌려 표식을 영구적으로 만든 흉터가 그의 몸에 144개나 남아 있었다. 바키타의 삶은 이탈리아 공사 칼리스테 레가니의 소유가 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공사를 따라 이탈리아로 건너온 바키타는 공사의 친구 아우구스토 미치엘리의 손에 넘겨진다. 아우구스토가 재산을 전부 팔고 수단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바키타는 일시적으로 베니스의 카노싸 수녀원에 맡겨졌다. 이 때 바키타는 남기로 결정하고 세례를 받고 수녀가 된다. 그녀는 여러 수녀원을 방문하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젊은 수녀들이 아프리카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걸 도왔다. 바키타의 가슴은 고향 아프리카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노예의 고통스런 시간은 생애 마지막 시간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병상에서 바키타는 “쇠사슬이 너무 꽉 조인다”며 “느슨하게 해달라”고 외쳤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바키타는 누군가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2월8일은 전세계 가톨릭 교회가 정한 ‘인신매매에 반대하는 세계 기도와 성찰과 행동의 날’이다.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를 기념한 날이다. 인신매매, 감금·강제노동, 성적 착취 등 이른바 ‘현대판 노예’로 불리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3600만명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전세계 인구의 0.5%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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