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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가권리금 법안 늑장…피눈물 흘리는 임차인들
정부 지난해 9월 법제화 발표 불구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지지부진
임대인 임대차계약 잇단 만료 통보
권리금 한푼도 못챙기고 쫓겨날 판



“저는 한푼도 못받고 쫓겨날 수 밖에 없어요. 거지로 나 앉느니 가스통이라도 매고 버티고 싶은 심정입니다. 연말까지 권리금 법제화 법안이 통과된다면서요? 이게 뭡니까.”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커피숍을 5년동안 운영해온 김모(51ㆍ여) 씨의 얘기다. 지난해 9월16일 정부가 상가권리금 법제화를 하겠다는 내용의 발표를 한 이틀 뒤, 김 씨의 가게로 임대인의 대리인이 찾아왔다. 투자자가 있으니 가게를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김 씨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김 씨의 경우 권리금이 인정이 안돼 현행법상 한푼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럴 수 없다고 버텼고 계약만료 기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급기야 명도소송(가게 등을 비워달라는 소송)이 진행됨을 알리는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신청 고시가 가게에 붙었다.

김 씨는 “세입자 입장에서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자리에 들어오는 임차인은 만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지난해 권리금 법제화가 발표된 후 ‘그래도 살길이 열렸구나’ 기대를 했는데, 차라리 법제화 발표가 없었으면 이런 일이 안생겼지 않느냐. 도대체 왜 미적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씨의 집주인은 “위법이 아니고, 저마다의 상황이 있는 법이다. 법제화 때문에 가게를 비워달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의 울분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정부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발의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권리금 법제화 방안)이 연말까지 통과됐다면, 김 씨가 이사비용을 제외하고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쫓겨 나가게 될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같은 일이 김 씨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권리금 법제화 방안 발표 당시 이로 인해 보호받는 상가 임차인을 120만명 정도로 추산한 것을 감안하면, 100만 이상의 제2, 제3의 김 씨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다.

개정안은 계약이 끝나면 임대인은 계약종료후 2개월까지 임차인이 다른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은 부진정소급효과가 있어 법안이 통과가 돼, 법 시행 당시 계약이 끝나지 않은 임차인들은 이법의 적용을 받는다. 안 대로라면, 다른 투자자를 이유로 계약연장을 거부하고 김 씨에게 가게를 비워달라고 한 집주인은 임대차 종료 시점의 권리금 산정액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아직 법이 통과되지 않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에서, 불법이 아닌 합법의 합리적 경제활동을 한 것이다.

국회에서 ‘조율’을 이유로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김 씨와 같이 ‘법적으로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헤럴드경제 2014년 10월27일자 참조

시장에선 유의미한 법안을 만들어놓고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입법부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김진태 의원 외에 민병두(새정치), 서기호(정의당) 의원 등이 권리금 법제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고, 김진태 의원 발의 후 며칠 뒤 서영교(새정치) 의원이 정부안에 보강안을 넣어 발의했다.

하지만 2014년 말까지 처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올 1월 법사위에 상정은 됐지만 심의되지 못했다. 결국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도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야 합의는 커녕 야당 내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영교 의원은 보강안을 통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고, 재건축 등으로 퇴거시 퇴거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 그리고 현재 4억원(서울) 수준인 환산보증금 기준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추가했다.

서 의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법제화를 잘못하게 되면 피해를 받는 상인들이 더 생길 수가 있다“며 “내법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나갈 때 권리금 책정기준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추가적인 안도 좋지만 급한 불부터 꺼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명동의 한 건물에서 7년동안 고시원을 운영해온 이모(58ㆍ여) 씨는 “가게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며 집주인의 아들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편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장만한 가게인데, 3월 고시원을 비워달라는 연락을 받고 매일 절망속에 있다가 지난 9월 이후 이 법 통과만 되기만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나가더라도 권리금이라도 받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지난해 발표한 법안이라도 우선 통과시켜놓고 추가 논의를 해달라”며 울먹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영주 변호사는 “정부 청부발의로 나온 김진태 의원 안은 오히려 권리금 법제화 방안을 최초 발의한 민 의원의 안보다 진일보한 안”이라며 “우선 김진태 의원의 안이라도 통과시키고 나서 추가 보강을 해야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논란이 된 재건축 문제 등도 일단 상인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놓고, 추가로 반드시 논의돼야 하는 게 순서”라고 했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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