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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뉴스 보도와 명예훼손
소위 ‘정윤회 문건 사건’은 검찰 수사가 맞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몇몇 ‘조무래기’들이 뜬금없이 일을 만들고 이를 유포했다는 것이 그 근간인 때문이다. 몇 달이나 ‘찌라시’에 온 나라가 큰일이나 난 듯이 난리를 친 것을 생각하면 허망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검찰 발표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문건의 내용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와 시사저널 기사에 등장했던 관련자들이 언론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사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두 언론사가 그 문건이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위 사실을 언론 매체가 유포했다면 형법상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형법 309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법 310조는 보도한 행위가 사실이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보도와 공공 이익과의 관련성을 따지는 것이 언론 보도와 명예훼손의 경계를 긋는 기준인 셈이다.

대법원은 1988년 공공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공이익의 판단은 보도의 구체적인 내용, 표현 방법, 침해 정도를 따져 결정하도록 했다. 상당성(정당한 이유)은 보도 내용, 신속한 보도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영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 후 판별토록 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은 사실’이라는 보도는 문건의 내용을 대부분 소개했지만 관련자들의 해명이나 반론은 싣지 않았다. 또 비리혐의 비서관에 대한 내사 관련 보도는 잘못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정정 보도를 낸 점은 상당성 판단에 옥에 티로 작용할지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난 문제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한다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더구나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할 일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신속한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신문의 속성상 허위를 진실한 것으로 믿었다면 ‘명예 훼손적 표현’에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사소한 오류를 축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뉴스 보도 과정에서 자주성과 자율성이 중요하고 또 미디어의 사회적인 역할이 인격권보다 더 소중하다는 점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인 책무는 환경감시의 기능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언론을 고발자 (whistle blower)나 감시견(watch dog)으로 부른다. 위험이 닥아 오면 신속하게 알리고 잘못된 일은 비판을 통하여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경고를 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잘못을 내세워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게 마련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언론이 호루라기를 마음대로 불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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