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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땅콩회항’ 이후, 세계 최고 한국 항공서비스는?
-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외국에 자주 나가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 수 있다. 선진국의 항공 서비스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필자가 유학했던 구소련의 항공 서비스는 그야말로 옛날 시골 버스 수준밖에 안 됐다. 국내선의 경우 산 닭이 사람들 머리 위에 날아다닐 정도로 거의 장터를 방불케 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 승무원이 기내 서비스는 고사하고, 승객들에게 군기를 잡는다. “식판을 옆사람에게 전달!”, “밥 먹게 옆사람 깨워”-이런 식이다. 물론 구소련이 해체되고 민간 항공사가 출범하고 나서는 많이 개선됐다.

우리나라 항공 서비스가 세계 최고란 주장이 필자 경험에서 나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만은 아니다. 거의 매년 CNN 방송은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뛰어난 10가지’를 선정해 발표한다. 지난 8월 30일 CNN은 한국의 ▷높은 카드 발급률 ▷성형 수술 ▷장시간의 노동과 짧은 수면 시간 ​▷혁신적인 화장품 ▷소개팅 문화 ▷IT 기술 ▷항공 서비스 ▷회식과 음주 문화 ▷여성 골프 선수 ▷스타크래프트 총 10가지가 세계 최고라고 발표했다. 

이 중에서 한국의 항공 기내 서비스가 세계 최고라고 극찬했다. 세계적인 항공사들이 한국의 항공 기내 서비스를 배우러 한국에 방문할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또 한국 승무원들이 고객의 자잘한 요청에도 끝까지 친절함을 잃지 않고 응대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빔밥이 떨어져 더 이상 고객에게 제공하지 못했을 경우 당황한 승무원의 자살할 것과 같은 표정은 웃겨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 CNN의 평가다. 이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를 누가 만들었을까?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은 2006년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 상무보를 거쳐 ‘땅콩 회항’ 사태로 사퇴하기까지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부사장직을 수행했다. 세계가 극찬하고 전 세계 승객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기내 서비스를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조현아 전 부사장과 승무원들이다. 문제가 된 ‘땅콩 회항’도 이유야 어찌되었든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의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사단이 난 것이다. 세계 최고의 항공 기내 서비스를 총괄하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아마도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150여억원어치)를 수거해 화형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충격요법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20년 전의 ‘이건희식 화형식’이 오늘날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2014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일벌백계식의 ‘땅콩회항’은 ‘슈퍼 갑질’에 ▷<여성>이라는 핸디캡 ▷반 재벌 정서 ▷대중의 시기ㆍ질투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 부족 4가지가 맞물리면서 구속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땅콩 회항’ 사태 이후 세계 최고의 항공 기내 서비스보다는 승무원들의 인격이 더 존중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동네 슈퍼에서 손에 잔뜩 물건을 든 나이가 지긋한 고객이 젊은 직원에게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무뚝뚝한 직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아주 갑질을 하시네, 조현아처럼”이라며 고객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번 ‘땅콩 회항’ 사태가 대한민국 서비스 산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지도 모른다.

온라인상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절대 악’으로 묘사되고 박창진 사무장은 ‘선량한 희생양’으로 평가 받는다.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누리꾼들은 마치 자신들은 ‘항상 을’의 입장이고 소위 ‘갑질’은 단 한 번도 안 한 사람들처럼 말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갑질’을 하며 살아간다.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닫히는 지하철 문에 손을 넣어 수백 명의 시간을 빼앗는가 하면, 교차로에서 꼬리 물기로 다른 차량의 시간을 낭비시킨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은 아무런 ‘갑질’을 안 하는 성인군자인양 소위 ‘정신승리’를 하며 자위하는 것이다.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 가면 ‘갑’인 고객이 ‘을’인 서비스 종사자들이 대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다. 팁을 줘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불쾌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바로 그런 것이다. 우스개소리로 앞으로 기내에서 ‘물은 셀프’문구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누려왔던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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