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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문호진]조현아의 거듭나기
처음에는 땅콩만했으나 집채만큼 불어나더니 결국은 태산처럼 커졌다. ‘조현아 파문’ 말이다. 조현아 개인은 평생 먹을 욕을 한꺼번에 먹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딸자식 교육 잘못시킨 죄인으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오랜 꿈인 국내 최초의 7성급 호텔(경복궁 인근) 사업도 접어야 할 처지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땅콩 회항’이라 놀려대면서 브랜드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나라망신 시켰으니 사명에서 ‘대한’을 떼어내고 태극문양도 쓰지말라는 목소리도 드세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시가총액이 2000억원 이상 감소한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킨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이다. 이 모두가 ‘사과의 골든타임’을 놓치며 일어난 일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은 격이다. 

1등석 이란 곳에 앉아본 적이 없는 99.9%의 ‘미생(未生)’들은 맞춤한 먹잇감이 등장하자 억눌렸던 분노를 활화산처럼 뿜어내고 있다. 성난 민심을 어찌하면 달랠 수 있을 까. 위기 시에는 모든 것을 벗어놓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기업사는 말한다. 미국 록펠러가가 20세기 초 악덕(惡德)기업 이미지를 벗겨낸 과정이 그러했다. 1914년 4월20일 록펠러가 소유의 콜로라도 러드로우 탄광에서 민병대가 파업 중인 탄광 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수십 명의 노동자, 어린이, 부녀자가 사망했다. 사건 이후 록펠러 가문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미국 전체에서 비난 시위가 일어날 정도였다.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무마하기 위해 록펠러 2세는 현장으로 나갔다. 탄광 노동자들과 같이 뒹굴고 춤추는 ‘순례’를 했다. 신문에는 “록펠러 2세가 탄광 노동자의 부인들과 함께 춤을 췄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이후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록펠러가의 사회사업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록펠러 2세는 가문의 계승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에서 벗어난 것도 ‘백의종군식 순례’를 택했기 때문이다. ‘삼성특검’ 여파로 2008년 이건희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외아들인 이 부회장(당시 전무)은 삼성전자의 CCO(최고고객 책임자)직과 S-LCD의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나 중국을 시작으로 신흥시장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지역으로 장기간의 해외근무 길에 올랐다. 이 전무는 한곳에 거처를 정하는 대신 수개월 머물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방식으로 일했다. 삼성가의 황태자가 열악한 험지 근무를 자청하는 ‘고행(苦行)’을 통해  삼성의 3세대 경영을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코넬대를 나온 조현아는 항공기 기내 서비스 부문에서 탁월한 실적을 쌓았다. 자신의 전공인 호텔경영에도 식견이 뛰어나다. 은수저를 물고 나온 덕분에 갖춘 자질이다. 이제 이런 어드밴티지를 버리고 고행의 순례에 나서야 한다. 맨손으로 시작해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대한항공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내는데 헌신한다면 세상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그 순례를 통해 “사람들은 평평한 땅위를 저마다의 보폭으로 걷고 있을 뿐, 누구도 누구의 위에 서 있지 않다”(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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