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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이정희> 한·중 FTA의 정치경제학
첨예화되는 美·中 경제패권 경쟁…3대 경제권과 FTA 체결한 한국
TPP, FTAAP 선택 강요받는 형국…동맹·국익 균형잡는 지혜 발휘해야


지난 11월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미국ㆍEU에 이어 세계 3대 경제권과의 FTA 체결이 모두 이뤄졌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주도의 글로벌 경제체제에 본격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주목되는 협정이 하나 더 있었다. 최근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로드맵’이 채택됐다. FTAAP는 2010년 APEC 소속 21개국이 창설을 합의한 다자간 FTA다. 창설 합의 후 4년만에 ‘2016년까지 FTAAP의 실현가능성과 방법을 공동 연구해 결과물을 내기’로 결의했다. 

FTAAP 로드맵 채택은 미국에 씁쓸한 대목이다. 미 정부는 APEC 회의 이전부터 중국의 FTAAP 공식화 의도를 알고 APEC 공동성명에서 관련 조항들을 빼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항은 ‘실현가능성 공동연구’와 ‘타결 시한(2025년)’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이 중 하나만 수용했다.

이처럼 아ㆍ태지역의 정치, 경제 패권을 둘러싼 G2 양국의 암투 속에서 한ㆍ중 FTA가 타결됐다. 미국이 아태지역 11개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 중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TPP는 미국 주도의 다자간 FTA다. 현재 주요 협상참여국은 미국 이외에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이다. 중국 참여는 사실상 배제됐다.

물론 미국이 공식적으로 중국의 참여를 반대한 적은 없다. 그러나 중국이 수용할 수 없는 규범, 예컨대 국유기업ㆍ환경ㆍ노동 및 지적재산권 분야 등에서 강한 기준이 제시됐다. 중국이 ‘사실상’ 배제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TPP는 미국 주도의 중국 봉쇄 정책이기도 하다. TPP의 당초 타결시한은 2013년이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협상국이 많고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가 다양한 것이 큰 이유다.

중국 입장에서 TPP는 용납이 힘들다. TPP 협상국은 모두 중국의 무역상대국으로, 현재 중국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미국 주도의 TPP로 묶이면 중국의 입지가 어려워질 것은 명약관화다. 중국의 대응은 한국ㆍ일본ㆍ호주 등 TPP 협약국가들과 양자간 또는 3자간 FTA를 추진하는 한편, 중국 주도로 다자간 FTA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번 한ㆍ중 FTA에서 중국이 농산물 분야에서 예상보다 많은 양보를 한 것이 전자를 위한 전략이라면, APEC 주최 기회를 활용해 FTAAP를 제시한 것은 후자의 전략이 발휘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미국 주도의 TPP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중국이 TPP보다 많은 21개국을 묶어 FTAAP를 출범시키기로 했으니 미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경제파트너인 중국이 자국 중심의 다자간 FTA에서 한국을 견인하려고 다투는 형국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이 TPP를 당초 의도대로 성사시킨다면 중국 경제 봉쇄는 물론 아태지역의 경제패권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TPP의 높고 강한 기준을 대폭 완화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FTAAP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카드를 활용해 TPP에 대응할 것이다.

한국은 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현재 상황은 우선 한ㆍ중 FTA 이후 TPP로 가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북한에 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더구나 TPP는 내용상 한국으로서도 껄끄러운 협상이고 협상국 중 상당수는 이미 양자간 FTA를 체결했거나 협의 중이다. TPP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그 위험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TPP 추진과 중국의 FTAAP 카드로 상징되는 글로벌 정치경제판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한ㆍ중 FTA 체결을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일면적 의의로 해석하기보다는, 미ㆍ중 주도의 국제정치판에 우리가 본격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읽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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