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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표> 애기봉(愛妓峰)
병자호란이 터지자 평안감사가 다급해졌다. 애첩 ‘애기’를 데리고 한양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런데 한강을 눈앞에 둔 개풍에서 감사는 북방 오랑캐에 잡히고 만다. 홀로 강을 건넌 애기는 북쪽을 향해 밤낮으로 무사를 기원하다 병이 들었고, 임이 올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산봉에 묻어주고 애틋한 사연을 기렸다.

경기도 김포시 월곳면과 하성면에 걸쳐 있는 애기봉(愛妓峰))의 내력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 서해로 흐르는 곳이어서 한국전쟁 때부터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해 온 곳이다. 1966년 10월 이 곳을 순시하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슬픈 전설을 전해 듣고 친필로 휘호를 써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강 하나를 마주한 천만 이산가족의 한 맺힌 설움과 상통한 때문이었다. 이후 북쪽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지난 10월 관할 해병부대가 자체 판단으로 43년의 역사를 지닌 애기봉 등탑을 철거해 말썽을 빚었다. 시설이 낡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상은 북한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가 짙었다. 대북 저자세 논란이 일자 박근혜 대통령도 적절치 못한 조치였다며 군을 나무랐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애기봉 정상이 다시 어둠을 밝힌다. 등탑 자리에 기독교 단체가 9m 높이 성탄트리를 세우기로 한 것. 종교행사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게 국방부 입장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애기봉 등탑이 개성에서도 관찰될 정도로 대북선전시설이라며 조준사격 위협을 가해 왔다. 때마침 김정일 사망 3주기(17일)와 맞물려 민감한 시기다. 기독교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평화를 염원하는 그윽한 불빛 하나 편히 드리우지 못하는 분단 현실이 안타깝다.

황해창 선임기자/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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