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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대모산 방화범의 기막힌 사연
‘자나 깨나 불조심’, ‘불조심 강조기간’ 

어린 시절, 겨울철 이맘때면 늘 달달 외고 또 가슴팍에 달고 다녔던 기억 새롭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조심만 하면 불을 피할 수 있는 것인지. 강조만하면 불조심은 저절로 되는 것인지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 말 같지만 불도 여러 종류입니다. 좋은 불, 나쁜 불, 좋다가 나빠지는 불, 일부러 지르는 불, 저절로 일어나는 불 등등. 

2008년 홧김방화로 불타고 있는 국보1호 숭례문.

그 중에서도 방화는 심각한 불이자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작정하고 지르는 불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닌,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반복해서 불을 질러대면 이건 범죄심리학으로 ‘병적방화’에 해당됩니다. 방화중독인거죠.

더 큰 문제는 병적방화가 예측불가측성에 연쇄성까지 더해진다는 점입니다. 이를 저지르는 방화광의 심리적 특성을 보면 가히 충격적입니다. 불꽃에 쾌감을 느끼는 데 갈망과 흥분, 기쁨과 만족감에 성적쾌감까지 동반하기도 합니다. TV로 불난리 뉴스를 보면 각성효과가 배가되고, 불 관련 영화나 음악에 탐닉하거나 불 꿈을 좋아하고 또 꾸길 원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방화광의 희망사항이 대개 소방업무 종사이고 실제로 소방관으로 일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계획된 방화나 담배꽁초 등 실화로 해마다 화마에 휩쌓이는 산.

그러고 보니 방화의 추억이 절절합니다. 고의성 화재로 인한 대형 참사로 멍들고 찢어졌던 우리 사회였습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와 2008년 숭례문 화재가 대표적입니다. 전자는 56세 정신지체 장애인이 사회 불만과 신병을 비관해 지른 불로 20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후자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70세 노인이 홧김에 계획적으로 불을 질러 국보1호가 소실됐고 국민적 자긍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고의성 화재가 앗아간 귀중한 목숨과 자산이 어디 이뿐인가요.

묻지마 방화든 홧김 방화든 그 이유는 매우 유사하다고 합니다. 사회와 가정에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심리, 그로 인한 증오심이 말 그대로 화근(火根)이라는 것입니다. 

2003년 불만과 신병을 비관한 방화로 2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화재현장.

서울 강남 대모산에 열흘 사이 여섯 차례에 걸쳐 30여 곳에 불을 지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주부 정모(53) 씨의 사연은 한마디로 충격적입니다. 이니셜만 대도 알만한 서울 명문 여대 출신에 부유한 형편이지만 시댁과의 갈등과 불화로 조울증이 심각했던 처지였다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배낭에 라이터와 휴지를 넣고 산을 찾아 불을 지른 정 씨, 남긴 흔적에 꼬리가 잡히고 말았습니다.

불을 보면 응어리가 풀리고 기분이 짜릿했다는 진술이 안타까우면서도 놀랍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범행 주기가 빨라지고 피해 규모도 점점 커지던 상황이었다는 경찰 발표. 이만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 앞서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쳐 옵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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