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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해준 선임기자]한국이 외환위기 한파에 시달리던 1998년 6월16일, 감색 양복에 하얀 중절모를 쓴 83세의 노인이 화환을 목에 두른 누런 황소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말한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이었다. 황소 고삐를 잡은 정 회장의 옅은 미소엔 짙은 회환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 소 판 돈 70원을 갖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소 한 마리가 500마리의 소가 되어 지난 빚을 갚으러 꿈에도 그리던 산천을 찾아갑니다.” 한국전쟁 이후 45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휴전선을 넘는 이 감격적인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며 천만 이산가족은 물론 전세계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견고했던 벽을 허무는 발걸음이었다.


그로부터 반 년 후인 1998년 11월18일 금강호가 이산가족 등 826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발해 금강산으로 향했다. 첫 금강산관광단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2003년 육로관광이 시작되고 코스가 다양해지면서 2007년 한 해 관광객이 35만명에 달해 피크를 이루었다. 북한의 동남쪽 변방 금강산에서 남북의 주민들이 얼굴을 맞대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고, 긴장을 줄이고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물꼬가 됐다. 어렵게 싹을 틔운 금강산관광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관광객은 총 196만명에 달했다.

요즈음 ‘통일대박’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작은 것부터 실천하지 않으면 대박 기대는 신기루가 될 것이다. 금강산관광 16주년, 관광 재개로 통일대박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낙엽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을 금강산이 그립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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