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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한상완> 안전의식이 안전을 지킨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나는 주말이면 승용차를 치워버리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직업이 주로 앉아만 있는 연구원이다 보니 주말만이라도 서서 돌아다니고 싶어서다.

지난 주말에도 여느 때와 같이 서울에 저녁 약속을 나갔다. 보통 때 같으면 지하철로 갔을 터인데 노선이 좀 복잡한 곳이라 광역버스를 탔다. 좌석제로 운영하는 파란색 광역버스를 탔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입석 손님을 받는 것이다.

더구나 전에 같으면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를 하는데 그것도 없어졌다. 나 혼자서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모르는 안전벨트를 매려고 찾는데 다른 승객들이 ‘유난스럽다’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말하자면 ‘당신 엄청 오래 살겠수’ 이렇게 비아냥대는 눈초리다.

그 버스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입석 승객을 태우고는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버스는 전용 차선으로 들어서서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내달렸다. 바로 옆 차선은 교통 체증으로 꽉 막혀 거의 정지 상태다.

정체 상태의 고속도로에서 혼자만 빨리 가고 싶어하는 얌체족이 전용차선으로 끼어들어 왔다. 조금 가다보니 단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그때는 일반 차선으로 살짝 끼어든다. 비상등 깜박이를 켜주는 센스를 발휘하면서. 그거 하나면 모든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 승용차 중 하나가 끼어들 자리를 못찾고 멈춘다. 뒤따르던 우리 버스는 급정거를 할 수밖에 없다. 아찔한 상황에 두 손에 땀이 가득 찬다. 아슬아슬하다.

광역버스 좌석제가 승객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안전하게 가라고 하는데 승객들이 위험하게 가겠다고 아우성이다. 아무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입석을 태우는 버스회사와 입석 승객. 안전벨트 안내방송을 하지 않는 버스 기사와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승객.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광역버스 입석 금지를 발표한 정부나 출근길 불편하다고 입석 금지를 반대한 승객. 그 와중에 슬그머니 입석제로 전환한 파란색 광역버스. 나 먼저 가겠다고 전용 차선을 위반하는 승용차까지. 초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는데 별 걱정하는 기색 없이 광역버스를 타고 다닌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에 관한 의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양적인 측면의 성장성은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에 대비되는 모양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거나,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노래방을 그냥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낮은 안전 의식은 낮은 안전시설이나 설계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시설 인프라들은 점점 노후화하고 있다. 도로, 다리, 터널 등 시설물 가운데 30년 이상 경과해 노후화된 시설물이 1984년 325개에서 2014년 현재 2328개로 급증하고 있다. 시설물의 안전 설계도 미흡하다. 예를 들면 화재발생 시 원활한 대피를 위해 모든 미닫이문은 비상구를 항해 밀어 열수 있어야 하는데, 서울 시내 초대형 신축건물조차도 그와 같은 안전설계가 부족하다.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발전이 같은 속도로 가지는 못한다. 고도 성장을 하다보면 질적인 발전은 뒤따르게 돼 있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개선되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데, 우리는 영 그렇지 못하다. 똑같은 사고가 매년 반복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20년전 성수대교 붕괴부터 시작해 삼풍백화점, 충주유람선, 대구지하철, 세월호, 최근의 판교 환기구 사고까지 매년 두세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한번 터지는 사고는 실수다. 그러나 두 번 터지는 것은 실력이다. 아직 우리의 실력이 그만큼밖에 안된다. 계속해서 제도를 고치고 시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장기간의 노력을 지속할 때 비로소 질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아무리 출근길이 바쁘더라도 안전을 희생하지는 말자. 그것이 또 다른 대형 참사를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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