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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아모레’와 동백꽃
#복사꽃 오얏꽃이 곱고 무성하지만/그 경박한 꽃은 믿기 어렵고/소나무 측백나무는 고운 색이 없어/귀한 바는 추위를 이겨내는 것뿐이네/동백은 어여쁜 꽃이 있으면서/또한 능히 눈 속에서 피어 나네/깊이 생각하건데 측백보다 나으니/동백이란 이름은 마땅치 않네/

#고려후기 명문장가인 이규보는 동백(冬柏)을 소재로 한 최초의 한시 ‘동백화’에서 ‘눈 속에 피므로 청수한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꽃’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소나무나 잣나무를 일컫는 송백(松柏)은 추위를 견디어 낸다는 점에서는 동백과 같이 귀하게 여길만하지만 동백은 그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눈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 더 사랑받아 마땅한데 ‘겨울 잣나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원통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동백나무는 주로 양지바른 남쪽 바닷가에 서식합니다. 제주도 일원은 물론이고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여수 오동도,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등이 주 무대인데 양은 그리 많지 않나 봅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동백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은 동백꽃이 남긴 열매로 짠 기름이라고 합니다. 꽃이 지고 난 다음 늦가을인 11월쯤이 되면 살구만한 열매가 열립니다. 떨어진 열매를 모아 씻어 말려 껍질을 깨 속살만 모은 뒤 곱게 빻아 삼베 주머니에 넣어 단단히 묶으면 기름떡이 됩니다. 이것을 기름판에 올려 짜면 여인네들이 머릿기름으로 요긴하게 쓴 동백기름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동백기름하면 왠지 짠한 향수가 코끝에 감겨듭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동백기름은 머릿기름이었습니다. 비녀를 꽂거나 묵어 단아해진 머리에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살짝 부어 양손바닥으로 비빈 다음 손바닥으로 머리를 앞에서 뒤로 눌러 미는 그 손길···

#동백꽃과 동백기름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화장품제조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동백기름에서 출발한 겁니다. 이 그룹의 서경배 회장의 부친 서성환 창업주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설립합니다. 그런데 창업의 단초가 바로 그의 모친이 부엌에서 짜 내 장터에 판 동백기름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사업 모태인 동백꽃(기름)

#창업주는 1943년 개성 백화점에 화장품 코너를 마련하고 화장품 사업을 시작합니다. 1960년대 중반,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코티와 기술제휴를 맺고 공장을 신축하고 1964년 국내 처음으로 방문판매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이어 한방 미용법을 연구해 인삼크림, 진생삼미 등 한방화장품을 출시해 주변을 놀라게 합니다. 애초 상호는 아모레였고, 1993년 태평양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집에서 짠 동백기름에서 출발한 태평양은 이름그대로 창대한 걸음으로 창업 이래 줄곧 화장품 업계 1위를 달립니다. 물론 숱한 좌절과 고통이 있었지만 모두 이겨내고 화장품 시장의 신기록을 연일 작성하고 있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입니다. 증시를 보면 이 회사의 위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회사 주가는 250만 원대로 단연 황제주입니다. 중국시장에서 대박을 낸 겁니다. 절로 굴러든 대박이 아니라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한 결과입니다. 철저한 구조조정 역시 본받을 만합니다. 증권이나 패션 등 화장품 외적인 사업은 모두 걷어내고 다시 ‘한우물 파기’를 택한 겁니다.

#그 결과 만성적자이던 화장품 업계에서도 태평양 주식은 그동안 보란 듯 100배나 올랐습니다. 핵심 브랜드인 ‘설화수’가 중국 중원벌을 휘저은 결과입니다.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 중국 내 세 번째 공장을 준공했다고 합니다. 그 크기가 무려 축구장 12배에 이르고 투자액은 1300억 원대에 이른답니다. 기존 중국내 공장보다 10배의 생산력을 갖췄다니 사업 하나 대차게 펼친다는 생각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대박 브랜드 ‘설화수’

#기자가 생각하기에 아모레 중국성공은 아주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아시아권 피부 우리와 유사합니다. 특히 모래바람 거센 중국내륙과 중앙아시아 여인들이 아름다움에 눈 뜰 날 곧 옵니다. 한국산 화장품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만 잘 통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경제하면 첨단과 IT가 떠오르지만, 올드패션 비즈니스도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적인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모레퍼시픽이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K뷰티, 파이팅입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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