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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문호진> ‘히든싱어’와 삼성전자
종합편성채널 JTBC의 ‘히든싱어’는 음악 예능 차원을 뛰어넘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톱 가수들은 자신 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는 힐링을 체험한다. 매너리즘에 빠졌던 자신을 돌아보고 진심을 담아 노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도 한다. 모창 능력자들의 스토리는 더욱 감동적이다. 외모 콤플렉스로 방 안에 갇혀 지내던 소녀가 세상을 향해 걸어나온다. 불우한 환경에서 방황하던 청년이 자신의 항로를 정하고 매진한다. 원조 가수들이 무심코 썼던 곡과 노랫말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해주는 원천이 된 것이다. 지금은 ‘꿈의 멘토’로 명성이 높은 스타강사 김수영씨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듣고 폭주족 생활을 끝낸 것 처럼.

모창능력자들의 스토리 못지 않게 감동적인 것은 원조가수 뺨치는 음악성과 가창력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에 천착해온 작가 말콤 글레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제기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얘기다. 모창능력자들이말로 이 법칙의 산 증인들이다. 자신들의 우상인 원조가수들의 특징적 뉘앙스, 발성, 음색, 고음과 일체화하기 위해 쏟아부은 열정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히든싱어의 재미를 배가하는 장치는 ‘통 속 경쟁’ 방식이다. 오직 통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의지해 원조와 모창을 가려내야 한다. 가창력이 유일한 판정기준이 되는 셈이다. 진짜를 뛰어넘는 가짜의 묘미가 여기서 나온다. 신승훈과 조성모, 소녀시대의 태연이 예술적 경지의 모창에 밀린 희생양이 됐다.

원조가수와 모창능력자의 경합을 보면서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게 글로벌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간판기업들이다. 삼성전자는 한 때 TV와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였던 일본의 소니와 NEC 등을 우상으로 삼고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피눈물을 쏟았다. 모창이 원조를 이기는 충격적 결과가 나오듯 삼성은 각고의 노력끝에 마침내 소니와 NEC를 넘어섰다. 이같은 모창의 힘은 애플의 아이폰 따라잡기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분기 영업이익 사상 첫 10조 돌파’라는 지난해 3분기의 실적이 하이라이트였다.

삼성전자가 모창능력자에서 원조가수로 위상이 바뀌자 그 자리를 꿰찬게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이다. 이들이 이번에는 ‘계급장’ (브랜드)떼고 통속에서 들려오는 소리(품질)로만 맞짱떠보자고 한다. 통 속에서 들려오는 삼성 폰과 중국 폰의 음색은 구별하기가 어렵다.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중국 폰이 들어있는 통을 선택하다보니 삼성이 지난 2년간 1위를 지켜왔던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처음으로 샤오미에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원조 애플’이 ‘모창 삼성’에게 당했듯 이번에는 삼성이 샤오미에 한방 먹은 셈이다. 그러다보니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실적의 40%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3년만에 다시 4조원대로 되돌아갔다.

히든싱어에 출연한 원조가수들은 4라운드로 펼쳐지는 모창능력자들과의 경합에서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 자칫 ‘나를 못알아 볼까’라며 자만심에 빠졌다간 중도에서 탈락하는 낭패를 본다. 그렇긴 해도 원조가 모창에 비해 우승확률이 월등히 높은 게 사실이다. ‘원조’라는 어드밴티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 애플의 프리미엄폰과 중국의 중저가폰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이처럼 승률이 훨씬 높은 원조 제품 창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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