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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국군의 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38선 남쪽으로 포탄이 마구 쏟아진다. 암호명은 ‘폭풍’. 민족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화력은 북한이 우리보다 5배 이상 우세했다. 준비된 남침에 속수무책의 방어였다. 개전 초반부터 속절없이 밀리던 국군은 낙동강 일대에 사선(死線)을 치고 죽기 살기로 맞섰다. 마침내 대구 인근 다부동에서, 안강-포항 일대에서 승리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반격까지 감행했다. 

이로써 인천상륙작전의 길이 터지고 유엔군과의 협공작전이 빛을 발해 서울을 탈환했다. 북한군 주력부대가 퇴각하자 유엔사령부는 항복을 끌어내려 했다. 내친김에 북진하려는 국군에 ‘정지’ 명령이 떨어진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러나 분기탱천한 우리군(육군 3사단)은 보란 듯 진군해 드디어 38선을 돌파한다. 전쟁 발발 1백여 일을 앞둔 10월 1일의 쾌거다.

바로 그날을 기념해 ‘국군의 날’이 제정됐다. 국방경비대 창설 후 각 군별로 기념행사를 해 오다 1956년부터 육해공 3군 통합 국군의 날로 승격된 것이다. 당초에는 법정공휴일이었으나 아쉽게도 1990년 평일로 되돌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침 1일은 건군 66주년 국군의 날이다. 충남 계룡대에선 ‘기본이 튼튼한 국군, 미래를 준비하는 국군’을 주제로 의장대 시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최근 잇따른 불미스런 군내 사건사고를 감안해 병영문화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특히 입장 때 군의 과거(건군용사)ㆍ현재(장병대표)ㆍ미래(사관생도 대표) 주인공과 장병 부모들이 함께 입장한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다 절실한 것은 ‘믿음’이다. 화려한 이벤트보다 뼈를 깎는 자세로 거듭나야 국민의 사랑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황해창 선임기자/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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