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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함영훈> 인천이 웃어야 대한민국이 사는 이유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해 위례성(한성백제의 수도)을 점령, 백제가 공주로 천도하던 475년까지 ‘매소홀(買召忽)’현은 해상 국제교류의 중심지였다.

조선 문종때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매소홀은 미추홀(彌鄒忽)이다. 두 단어의 발음 차이는 표기법의 변화 때문 일 뿐이다, ‘물의 골짜기’라는 뜻에서도 같다. 미추홀은 능허대(凌虛臺)를 항구로 해서 황해 건너편 외국과 교통했다.

미추홀은 기원전 1세기, 고구려 시조 주몽의 첫째부인 소생 유리와 후계 경쟁을 하다 밀린 비류가 새로운 왕조개창을 선언하며 남하해 처음 터잡은 곳이다. 서울올림픽의 메카인 지금의 서울 강동,송파, 경기도 하남 일대 위례성에 둥지를 튼 동생 온조가 고대국가의 틀을 빨리 잡아, 수자원 확보 문제로 연착륙에 실패한 비류를 제치고 공식 왕조 개창에 성공했지만, 온조와 온조계는 한동안 비류계 사람을 중용하고 대권까지 잇도록 하는 포용력을 보였다.

미추홀은 인천 문학산성과 그 주변을 일컸는다. 문학산은 ‘능허대’였던 인천항과 현재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삼각축의 꼭지점이다. 인천은 마니산과 삼랑산성 등 단군조선시대 흔적이 발견되는 등 7000년의 도시 역사를 자랑한다. 인천시 공식 시사(市史)에 나온 내용들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인천은 늘 개경과 한성 등 수도(首都)를 감싸고 지키거나 수도로 공급하는 온 세상의 문물을 실어나르는 문지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영역이던 시절에는 농어촌 고을로 남아있다가 통일신라때엔 해양교통의 중심지가 화성 남양만이 되면서 인천에는 외침 방어용 대규모 군진이 설치되고 해상교통의 안전을 담보하는 군사기지로 기능한다.

송나라와 경제전쟁을 벌이며 대외무역을 장려하던 고려때엔 수도 개경에 이르는 수로(예성강) 입구의 강화, 교동, 자연도 등으로 대외교통의 거점이 확대된다. 아울러 군사적 기능도 유지해 개경 남방지역을 방어할 안남도호부로 격상된다. 시흥과 서울 양천, 김포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경제군사 거점이었다. 지구촌 거상과 군대가 우리를 ‘코리아’라고 부르게 된 터전이었다.

상처도 많았다. 몽골침입때엔 ‘피난수도’로, 왜란과 호란땐 최전방 방어기지로 많은 피를 흘렸다. 프랑스와 미국을 격퇴했더니 일본군이 침략해 강제개항을 당하면서 일제에 이르기까지 수탈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40년전 경제개발때 인천항 물동량 증가가 수출입국, 한강의 기적를 부르는 촉매제가 되었고, 국제공항, 국제도시가 건립되면서 사람과 물자를 서울로, 전국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인천은 서울이고 서울은 인천이 되어버렸다. 인천이 웃으면 서울이, 대한민국이 웃는 것이다.

인천은 한국의 샌프란시스코,상하이,마드리드로서 경제, 외교, 통상, 문화의 지구촌 거점을 꿈꾼다. 국민 모두가 19일 개막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야할 이유이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있는 송도 건물이 ‘미추홀(Meet You All) 타워’인 점이 새삼 느껍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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