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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잉여스럽다
전후 문제적 작가인 손창섭의 대표작 ‘잉여인간’은 발표된지 50년이 지났는데도 요즘 세태와 잘 맞아떨어진다. 치과의사인 만기의 병원에는 30대 중반의 중학 동창생 둘이 매일 출근하다시피한다. 둘은 만기가 출근도 하기 전 일찌감치 나와 쇼파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신문을 읽거나 닭처럼 조는게 일이다. 중학시절 재기발랄했던 봉우는 현실에 부대끼면서 점점 의욕상실에 불면증으로 생활력을 상실하고 활동력 강한 아내에 의존하는 처지다. 익준 역시 가장노릇 못하기는 마찬가지. 딸린 식구가 여섯이지만 아내가 생선 행상으로 겨우 풀칠해나간다. 중학을 나와 특수한 기술도 빽도 없는데다 나이도 차 익준은 아예 취직을 단념했다.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잉여공주’에는 예술적 감각을 지녔지만 현실 앞에서 결국 취업전선에 뛰어든 찌질한 취업준비생이 나온다. 자기소개서를 수십장씩 써 곳곳에 지원하지만 추풍낙엽꼴이던 그에게 한 식품회사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통보가 온다. 면접관은 그에게 농담조로 자기 얼굴을 그려보라며, 왜 그림을 계속 그리지 여기에 지원했느냐고 비꼰다. 3년 사귄 여자 친구에게도 차인 그는 ‘안될 놈은 뭘 해도 안된다’는자괴에 빠진다. 이런 세태는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 주말 개봉한 일본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는 대학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잉여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연예인을 꿈꾸는 다마코는 번번히 낙방하며 꿈과 현실의 괴리는 깊어진다. 만화책으로 소일하며 부모에게 얹혀 살며 채무 유예는 점점 길어진다. 이런 잉여인간을 자본과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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