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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술 칼럼] 투명인간 취급받은 ‘태권도 산증인’ 노병직 옹
[헤럴드스포츠=박성진 무술전문 기자]지난 9월 2일 오후 7시 30분 경, 인천공항 입국장에 드디어 노병직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기가 연착해 1시간이나 더 기다린 후였다.

입국장에는 20여 명의 태권도인들이 노병직 선생을 환영했다. 노병직 선생은 대부분이 제자, 또는 제자의 제자의 제자 뻘인 이 태권도인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았다. 그 중에는 노 선생의 직제자인 강원식 전 국기원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노 선생을 마중하러 온 사람들은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노 선생의 송무관 계열 제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국기원이나 대한태권도협회와 같은 태권도계 대표적인 단체들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강원식 전 국기원장은 본인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전 국기원장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격으로 나왔을 뿐이다.

노병직 선생은 현존하는 유일한 태권도 1세대로서, 태권도계 최고의 어른이다. 그러나, 세계태권도의 중심을 자처하는 국기원은 이러한 노병직 선생의 방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고도 국기원이 태권도의 메카라고 자처할 수 있을까?

대한태권도협회도 무성의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병직 선생은 1966년부터 67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역임했다. 태권도 통합에 앞장섰으며 대통령기단체대항전 등의 대회를 만드는데 노병직 선생의 공이 컸다. 노 선생은 여러 역대 회장 중의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날 공항에서는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노병직 옹이 태권도원에서 훈장을 받고 있다. [사진=인사이드태권도]

가라데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던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서 발전하게 된 것은 물론 노병직 선생만의 공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70년대 이후,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고, 올림픽 스포츠로까지 가입될 수 있었던 것은 노병직 선생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병직’이라는 이름이 태권도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적어도 태권도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노병직 선생의 입국장을 보면서,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그 조직의 주요 임원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기자는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달 초가 추석이었다. 추석의 가장 큰 의미는 조상을 생각한다는 점일 것이다. 형식에 치우쳐서는 안되겠지만,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는 것, 그것이 추석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태권도인들의 뿌리는 무엇인가? 과연 그것들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가? 그렇지 못하기에 아직도 태권도의 역사가 2천년이 넘는다는 엉터리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태권도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9월 4일 열린 태권도원 개원식은 국무총리를 비롯해 여야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며 국가적인 행사로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행사를 마치고 나서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제법 터져나왔었다. 국가적인 행사로서 치러진 것은 좋지만, 정작 태권도인들의 행사에, 태권도계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축사를 하지 못하며 배제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태권도인을 대표해서 개원식에서 목소리를 냈으면 좋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행사의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 날 행사에서, 태권도인들은 누구의 눈도장을 찍기에 더 바빴는가를 말이다. 태권도계 최고 원로인 노병직 선생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노 선생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96세의 노구를 이끌고 방한한 노 선생이 그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사진을 다 찍을 수 있겠는가? 노 선생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태권도인이라면, 남들은 사진을 찍으려고 옆을 기웃거리더라도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 족했어야 했다. 실제로 노 선생은 지나치게 사진을 찍으려는 일부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게다가 행사가 끝나고나서, 태권도계 주요 제도권 인사들은 노병직 선생의 거취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참석한 사람 중 가장 힘있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식사 자리에 끼기 위해 앞을 다퉈 김무성 대표를 쫓아갔을 뿐이다.

태권도인들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는다면, 누가 태권도인들을 존중하고 존경하겠는가.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이번 노병직 선생의 방한과 태권도원 개원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kaku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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