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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배출권거래제 시행 불만에도 기업들 ‘찍’소리 못하는 이유는?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정부가 예정대로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한다고 지난 주 발표했습니다.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이 입법되면서 예견했던 일이고 정부가 2015년 시행을 여러차례 강조해온 탓에 예상가능한 결정이긴 했지만 기업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시행 시기를 연기해달라’, ‘BAU 산정을 다시 해달라’ 는 등 정부에 여러차례 건의도 넣고 읍소도 해왔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게 산업계의 의견입니다.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배출권 거래 기준가격인 1만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더라도 배출권 구입비용은 약 3조원, 과징금은 최대 8조5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경쟁국가들도 시행하지 않은 제도를 우리가 먼저 시행했을 경우 결국엔 해외시장에서 기업들의 경쟁력만 저하될 수 있다는 하소연입니다.

실제로 기자가 개인적으로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 철강사 CEO는 최근 정부 부처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재 철강업계가 할당 받은 탄소배출권제 할당량 중 4000만t 정도가 부족해 더 늘려달라고 건의했지만 결국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또다른 철강사 고위 임원은 “할당량 숫자도 안나온 상황에서 4개월 뒤에 제도를 시행한다는 건 기업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데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습니다. 개별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는 불만을 쏟아내는 기업 관계자들이 정작 배출권거래제 시행에 따른 회사의 비용 부담 규모를 묻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공개가 어렵다’는 답을 해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회사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업계를 대변하는 각 협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업계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업계별 피해 예상 규모를 요구하면 “전경련에 자료를 다 보냈으니 전경련 쪽에 물어봐달라”고 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총대를 메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탄소협력금제의 경우는 자동차업계가 ‘국산차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며 강하게 대응한 끝에 시행이 연기되며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됐고 이에 비해 강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다른 업계들은 정부의 추진 방향대로 끌려가게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2009년부터 시행이 예정됐던 것인데 왜 이제까지 준비하지 못했나’라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족했을 수는 있지만 기업들은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신기술을 확보하고 설비를 보수 및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의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 만큼 좀 더 여유를 두고 시행을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2015년 시행이 결정된 만큼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정부는 이달 안에 할당위원회를 열어 할당계획을 수립하고 10~11월께 기업별 할당량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각 업종별 감축률을 줄이고 BAU재산정 작업에도 산업계의 의견을 더 적극 나서기로 했습니다. 남은 4개월이라도 정부와 산업계가 적극 소통해 배출권거래제가 잡음 없이 연착륙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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