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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 세계 1위 오르다 만 김경률 ‘나를 춤추게 하라’
-세계 1위 코 앞서 멈춘 김경률, 그 뒤 내리막길 타는 이유는?
-최강 멘탈 바탕엔 ‘충분한 연습에서 오는 자신감’
-”선수와 기업 스폰서십 관계 활성화하려면 당구계와 환경 변해야”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한국 3쿠션 당구의 아이콘 김경률(31ㆍ㈜DMT)이 요즘 이상하다. 왠지 힘을 못 쓰고 있어서다. 지난 2011년 한 때 한국인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인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고, 정상등극도 금세 가능해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 8월 현재 그의 세계랭킹은 8위이며 한국랭킹은 고작 7위다. 최근 몇년 동안 이렇게 랭킹이 떨어진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경률 프로가 미국에서 열렸던 해외 친선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생겼다. 그가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모티베이션이 결여돼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동기부여가 안 되면 성적저하는 거의 예외 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세계 1위 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면 할 맛 나겠습니까”=그가 ‘국제용’으로 통한 이유는 실력과 이를 실행하는 멘탈 파워에 있다. 다른 선수들은 해외 대회에서 소위 ‘얼어버린다’.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기가 죽어 평상시 기량으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만은 국내 경기에서보다 더욱 펄펄 날았다. 큰 경기에 강한 진정한 실력자라는 평가는 온전히 그의 차지였다. 고 양귀문 옹은 물론, 고 이상천 선생도 도달하지 못한 세계랭킹 2위의 자리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당시 1위 딕 야스퍼(네덜란드)와는 단 7점 차였다. 이후 한 대회에서 그보다 약간만 더 성적을 잘 내도 1위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지만 그 뒤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점점 내려왔다. 이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사실 2위 실력도 안 되는데 최선을 다하다보니 거기까지 갈 수 있었다”며 겸손하게 답했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멘탈’이란 건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혼을 다 실어서 치는 것’입니다. 어느 선수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멘탈이 생깁니다.” 김경률은 역으로 질문을 던져온다. “그랬던 제가 요즘은 그 시절 멘탈에 한참 못 미치죠.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김경률이 스스로 그 이유를 알려주고 싶어서 던진 말이다. “세계 랭킹 1위를 하기 위해서는 피땀을 흘려야 합니다. 하지만 피땀을 흘려 1위를 하든, 건성건성 대충 해서 20위를 하든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굳이 피땀을 흘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재미있는 당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작한 인터뷰가 원 취지와는 달리 김경률의 의지대로 흘러간다. 작심한 듯 가슴속에 담아둔 ‘세상을 향한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그는 “2위를 한창 달리고 있을 때도 기업으로부터 스폰서십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1위를 하더라도 마찬가지 형편이 아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경률에게 모티베이션의 저하, 멘탈의 저하는 바로 이런 원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당구인,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는 실력자가 이런 아쉬운 소리를 하다니.

물론 세계적 메이저 프로 스포츠인 야구, 축구, 테니스 등에 비할 건 아니지만 그도 억대 연봉자다. 경남 양산 출신인 그는 실력 하나로 지자체들의 모셔가기 경쟁 속에 서울시당구연맹에서 전남도체육회로 소속을 옮겼고, 국내 최대 큐 브랜드 한밭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일반기업인 ㈜DMT에서도 사원 대우를 받으며 급여 형태로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그의 아쉬운 소리는 개인적인 아쉬움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당구가 스포츠로서 전체적으로 좀더 프로페셔널한 기반과 문화를 구축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공동체론이었다. 그는 “기업이 세계 랭커를 상대로 스폰서십을 진행하더라도 거기에 든 비용만큼 홍보효과 등 유무형적 이윤을 창출하기가 어렵다”며 “스포츠마케팅 논리상 기업과 선수가 서로 윈윈이 돼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기업의 일방적인 지원에 그치다보니 더 발전된 스폰서십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당구 생태계가 변하고 기업 참여도 활성화 될까. 업계 추산 1200만명의 당구 동호인과 2만여 곳의 당구클럽이란 든든한 저변도 있다. 김경률은 “저는 모르죠”라며 겸연쩍어하면서도 “당구계는 이미지 쇄신을 통해 스포츠로서 더욱 품격을 갖추고, 대중 팬들과 기업은 그에 맞춰 인식을 전환하면 좋은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타고 난 당구 수재, 노력은 천재였다=이야기가 당초 취지와 다르게 어렵고 재미 없는 분야로 흘러 버렸다. 억지로 이야기의 흐름을 틀었다. 당구 말고 취미가 있는지 물었다. “취미가 당구고 특기가 당구입니다. 그래서 직업도 당구죠. 한 번씩 등산을 가거나 족구를 하는 것 빼곤 모두 당구에 올인합니다.”

그는 총각 시절 휴일도 없이 하루 8~10시간씩 맹훈련을 했다. 2012년 8월 3년 열애 끝에 결혼, 2살 된 딸 연우(2013년3월생)를 놓기 전까지다. 이후로는 하루 3~4시간을 간신히 빼서 훈련에 쓴다. 아무래도 결혼 후 돌봐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혼 때문에 훈련시간은 줄었지만, 그래서 성적이 떨어진 건 아니에요. 메이저리그 커쇼 보세요. 장가 가도 더 잘 던지잖아요.”

원래부터 당구를 잘 쳤을까.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고교시절 당구장 출입 6개월만에 4구 당구 수지로 400 정도의 실력이 됐다. 말이 쉬워 400이지 소질 없는 사람은 평생을 쳐도 도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2003년 2월 프로에 입문해서도 만 2년여 만인 2005년 5월 한국 랭킹 1위에 올라선다. 초스피드로 정상을 찍은 것이다. 김경률은 “재능도 있었겠지만, 남들보다 훨씬 열심히 많은 시간을 매달린 결과”라고 돌아봤다.

당구계에서 가장 친한 이는 ‘선한 눈빛의 카리스마’ 허정한이다. 같은 경남 출신이다보니 허정한, 최성원 등과 교류가 가장 많고 말도 잘 통한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도 허정한이 추천했었다. “호칭은 형, 형님, 정한이형 이렇게 부릅니다. 사투리로는 ‘헤임 밥 무우쓰예?’ 이렇게도 하고.”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형과 동생이 모두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한국에서 제일 잘 친다는 김경률과 그에 못지 않다는 허정한이 국가대표로 나서서 입상에 실패한 것이다. 당구계는 물론 체육계에서는 이들이 메달 색깔만 놓고 겨룰 것으로 내다봤었다. 하지만 상식을 벗어날 만큼 짧게 구르는 생전 처음 보는 당구대에서 이들은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곧 열릴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선 종목 수가 너무 많아 솎아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3쿠션, 풀 등 전 종목 당구가 빠졌다. 설욕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섭섭하다는 그는 2018 하노이(베트남) 아시안게임에선 다시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베트남은 당구가 거의 유일한 메달 도전 가능 종목이기 때문이란다.

멘탈이 안 올라왔다 해도 김경률은 김경률이다. 내달 구리에서 열릴 3쿠션 월드컵 대회와 국내 개최가 결정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유력 우승후보인 사실은 변함없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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