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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전창협> ‘레기’ 와 ‘피아’ 가 만드는 세상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4일째인 28일 아침, 우리는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란 자괴감이 앞선다.

박수경씨 얘기다. 사건의 본질은 휘발되고, 엉뚱한 얘기들만 넘쳐난다.

25일 저녁 유대균씨와 그의 도피를 도운 박수경씨가 검거돼 모습을 드러냈다. 태권도 선수출신에 30대, 미모와 꼿꼿한 모습에 박씨는 ‘호위무사’란 별칭이 자연스레 붙여졌다. 게다가 이혼소송중이란 얘기가 겹쳤다. 결정적으로 대균씨가 도피생활을 한 석달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둘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 언론에 부각됐다.

언론의 보도는 한참을 더 나아갔다. 한 방송사 출연자는 둘이 사실상 내연관계라면 범인 은닉ㆍ도피죄의 경감사유가 될 수 있다고 얘길했다. 검거모습이 담긴 CCTV가 공개됐다. 2시간을 버티다 나온 박수경씨가 두손을 들자, 진행자는 “박씨가 무도인으로 항복표시를 한 것”이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손을 위로 드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수도 있었지만 무도인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오피스텔 내부 수색장면에 냉장고에 초콜릿음료가 보이자, 장기은신에 칼로리가 높은 음료를 저장했다란 분석까지 곁들어졌다.

박씨와 세월호 참사와 인과관계는 어느정도 일까? 박수경이란 ‘인(因)’이 세월호 침몰이란 ‘과(果)’에 어느정도 책임을 져야 할 지는 따져봐야 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도왔던 대균씨는 세월호 실 소유주 처벌과 책임재산 환수란 측면에선 ‘깃털’에 불과하다는게 정설이다. 박씨의 혐의는 범인 은닉ㆍ도피죄로 3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되는 죄다.국민의 관심이 높다해도, 초범이란 점을 감안하면 실형에 선고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한 상황이다. 모든 것을 양보해도 ‘미모의 호위무사’ 운운하며 박씨의 사생활을 들춰져야 할 만큼, 중한 범죄자는 아니다. 자신의 저지른 범죄만큼 책임진다는 ‘비례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세월호 참사이후 ‘레기’와 ‘피아’가 넘쳐난다. 쓰레기란 말을 뼈대로 한 ‘레기’는 기자를 합친 ‘기레기’, 교수와 합성어인 ‘교레기’ 등을 탄생시키며 익숙한 조어가 되고 있다. 마피아를 근간으로 재무부관료 출신을 합친 ‘모피아’를 원조로 ‘피아’역시 ‘관피아’, ‘정피아’, ‘철피아’, ‘해피아’ 등을 양산하고 있다.

기자 입장에서 기레기란 표현은 과하지만, 세월호 속보경쟁에서 오보를 양산했던 점이나, 박수경씨 보도를 보면 보통사람들의 정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추측할 수 있다. ‘교레기’ 역시 청문회를 보면 이 용어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각종 ‘피아’도 적폐의 근원이란 점에서 다를 바 없다.

회사가 있는 광화문 주위를 보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상중(喪中)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고, 서울광장과 청계천광장에는 노란 리본들이 무심히 흩날리고 있다.

‘레기’와 ‘피아’가 만든 세상을 바꾸는 일,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큰 숙제다.
 
전창협 디지털콘텐츠 편집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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