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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선임기자의 세상읽기> 진보야 초보야?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등교시간 늦추기’가 요즘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화두라고 합니다. 오전 8시대로 맞춰져 온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9시대에 맞추겠다는 것입니다. 진보교육감들이 곳곳을 꿰차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에게 수면시간을 더 주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동량인 청소년들의 건강을 챙겨보겠다는 배려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주자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하나 더, 아침밥도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이 보다 더 값진 인성교육이 없다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참으로 가상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그림이 그려집니다. 느긋하게 실컷 자고 저절로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다보면 “000, 밥 먹자”라는 엄마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들리고, 오순도순 온 가족이 어제와 그제처럼 오늘도 엄마가 손수 지은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소담스런 반찬을 먹고 맛보며 정감 어린 대화를 즐기는, 그런 풍경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은 미국이 일본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미국보다는 80~90분 정도, 일본보다는 50~60분 정도 부족합니다. 이것도 평균치일 뿐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대다수 학생들은 거의 누워서 자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수면문제를 놓고 질병관리본부가 고민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한다미로 “꿈 깨자” 입니다. 동화 같고 만화 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선 느긋하게 일어나는 것이 우리 현실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도 이런 한가한 아침을 소재로 택하지 않을 겁니다. 얘기가 됐으면 방송사들이 막장 드라마보다 가족드라마를 진작 식탁 옆에 마련했을 겁니다.

오랜 세월 맞벌이 가정을 유지해 온 기자는 진보교육감이 추구하는 그런 가정문화를 염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맛벌이의 장단점을 따지자면 단점이 훨씬 아프게 많다는 입장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보다 보이지 않게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지요.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침 7시 반에 등교하는 숙명여고 학생들. 청소년 건강을 고려한 서울시 협조로 학교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가령, 아이들의 등교를 책임지는 아빠들의 경우 맨날 대놓고 지각일 겁니다. 회사에서 특단의 대안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혼란만 가중될 수밖에 없지요. 애들은 알아서 등교하면 되지 않으냐 지만 이 또한 아늑한 아침문화와 거리가 멉니다. 동반등교는 나름 장점이 있다. 차 안에서 밀린 대화도 나누고 점검도 이뤄집니다. 다행스럽게도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한데 어우러진 덕분입니다.

고등학생들의 등교가 8시대에 맞춰진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입시시간에 맞춰진 것이지요. 습관으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함이고,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정도 더 일찍 나옴으로써 성실성을 키울 수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남학생들의 경우 머잖아 국방의 의무에 나서는 입장입니다. 불규칙적인 것도 늘 일정하게 반복되면 규칙적인 것이 되는 법입니다.

하나 더 결정적으로 놓친 것이 있습니다. 늦게 일어나면 그만큼 늦게 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공부를 즐기는 학생들은 더 공부를 할 것이고, 그 반대인 학생들은 공부와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가급적이면 늦게 잠자리에 드려 할 것이 뻔합니다. 잠재우기 투쟁, 이 또한 부모들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씩 움켜잡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얄궂은 것이라도 탐닉한다면?

등교시간이 늦춰진다면 학생들이 죄다 박수치고 기뻐할까요. 아닙니다. 철없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공부와 아예 담을 쌓은 학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다수 학생들은 수심이 더 깊어질 것입니다. 늦게 가고 일찍 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엄연한 현실인 학원가는 것도 혼란이고 그만큼 귀가는 더 늦어질 겁니다. 웬만한 학생들은 숙제는 못해도 걱정은 할 줄 압니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게 분명합니다.

이런 문제는, 학교 특성에 맞게 현실을 감안해 학부모들과 상의해 운영의 묘를 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고 운영위원회가 있고 자치위원회가 있는 것 아닙니까. 진보주의자들은 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야말로 학교장 재량으로 믿고 맡길 일입니다. 교육계 수장들이 시시콜콜 잡다하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됩니다. 인기를 추구하고 폼을 잡을 것이면 정치 쪽을 택했어야 했습니다. 진보교육감인지 초보교육감인지 헷갈립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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