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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 삼성 경영도 월드컵처럼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갔다. 정열적인 삼바리듬은 전차군단의 정밀 타격에 스텝이 꼬이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1대7 패배.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 한 경기에서 7골을 허용한 건 80년 만이다. 이른바 ‘미네이랑(9일 열린 브라질ㆍ독일 준결승전 경기장 이름)의 대참사’다. 팀의 구심점인 네이마르가 빠진 브라질 축구는 복원력을 잃고 속절없이 침몰했다.

하루전에는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7조2000억원(매출 52조원)의 2분기 실적을 내놓았다. 영업이익 10조원대 신화를 썼던 지난해 3분기에 견주면 가히 충격적이다. 무엇보다도 9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액이 줄어든 게 뼈아픈 대목이다. 이른바 ‘어닝쇼크’. 구심점인 스마트폰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마지노선인 8조원대 마저 무너졌다.

독일 전차군단이 브라질의 삼바리듬을 멈추게 했다면 삼성의 발목을 잡은 것은 차이나 IT군단이다. 브라질월드컵에 등장한 독일축구는 힘과 높이만을 앞세워 세차게 밀어붙이는 예전의 뻣뻣한 전차군단이 아니었다. 특유의 게겐 프레싱(전방압박)에 스페인의 티키타카(탁구공이 오가듯 짧고 빠른 패스플레이), 네덜란드의 카운터 펀치 역습이 조화를 이룬 스마트 전차군단으로 진화했다. 네이마르의 브라질이나 메시의 아르헨티나,호날두의 포루투갈 처럼 걸출한 스타 1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탄탄한 전력도 강점이다. 뮐러-외질-괴체의 3각 편대가 상대에 따라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적진을 교란한다.

독일축구가 스마트 전차군단으로 진화했듯 차이나IT군단도 특유의 가격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겸비한 강력한 원ㆍ투 펀치로 스마트폰 시장의 글로벌 빅3를 위협하고 있다. 샤오미ㆍ레노버ㆍ화웨이 삼각 편대를 앞세운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중저가 시장에서 삼성을 밀어내고 있고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턱밑’ 까지 왔다는 평가다. 삼성이 애플의 뒤를 쫓는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 위치로 올라섰듯이 차이나IT군단도 삼성을 제칠 기세로 바짝 따라붙은 것이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 지난 6년간(유로 2008ㆍ2012 및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세계축구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티키타카는 네덜란드의 ‘번개 역습’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2012 런던올림픽때는 통했던 홍명보 감독의 4-2-3-1 전술은 상대에 따라 3-5-2, 5-3-2, 4-3-3 포메이션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창조축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휴대폰의 제왕이었던 노키아, 워크맨 신화의 소니, 필름의 대명사 코닥도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다가 스페인축구처럼 한 방에 훅 갔다.

삼성이 차이나 IT군단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려면 ‘포스트 티카타카’ 시대를 이끌 독일 축구처럼 파괴적 혁신을 통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해야 한다. 스마트폰 원톱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 삼성은 지난 2010년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 자동차배터리,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언했으나 아직껏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시대가 맞물리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서 새로운 기회도 포착해야 한다. 홍명보의 실패에서 보듯 월드컵은 감독의 리더십이 승부를 가른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이끌 ‘이재용의 삼성’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문호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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