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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 함영훈> 놀아야 산다
인간에 대한 숱한 ‘규정’ 중에서 학창시절 우리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호모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이성적 존재임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인간 가치 실현의 마당인 직장생활, 즉 이성와 합리성이 요구되는 영역을 살면서 우리는 날이 갈수록 이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복잡다단한 양상이 얽힌 현장에서 이론이 지는 사례는 무수히 많고, 차가운 이성은 따뜻한 정서적 교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열정은 회계부서의 계산기를 비웃듯 기적 같은 가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라던 민태원 수필의 참뜻을 서른 넘어서야 알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에 반기를 든 논리는 호모루덴스, ‘노는 인간’ 이다.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호이징가는 호모사피엔스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하는 면모 못지않게 노는 것이 인간 본연의 특성임을 강조한다.

놀이는 인간 본능인 자유의 표현방법이다. 놀이는 자발적인 언행과 호기심의 집약체이므로, 새로운 문화형식을 창출해낸다. 물질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정서적 활동이다. 인간본능을 분출하게 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정서적 안정감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지탱해 준다.

상인, 기능공, 샐러리맨, 연구자, 정치가, 사업가, 법조인, 언론인 할 것 없이, 일상은 직장에서 퇴근하면 저녁 먹고 TV나 디지털기기와 어울리다 자는 것이다. 놀 시간과 공간은 물론 마음의 여유 또한 충분치 않다.

그래서 주말을 낀 시점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이성과 합리의 영역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떠나는 것은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놀이이다.

17세기 영국 사상가 토마스 풀러는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고 했고, 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영원한 소년이던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는 점을 실천하며 살았다.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표되는 근대화의 합리성은 놀이를 배격했고, 어느덧 ‘근면한 한국인’이라는 칭찬의 굴레 속에 놀 여유없는 우리로 길들여놓았다.

이성으로 절제와 인내를 강제하다가는 우리의 감성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개인의 스트레스, 사회적 소음으로 이어지면서 이성적인 사회유기체의 기능을 손상시킬수도 있다. 그래서 놀이와 여행이 없는 인간과 사회는 반쪽이다.

한 해 20~30일의 휴가는 규정에만 있을 뿐, 우리는 열흘을 쓸까말까 하는 관행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왔다.

일할 땐 최선을 다하고, 놀 땐 놀아야 한다. 가족도 사회도 경제도 내가 과감히 여행을 떠나야 산다. 생산성의 기초인 이성의 감가상각을 막기 위해서라도 올 여름, 과감히 여행가서 대차게 놀다 오자.

함영훈 라이프스타일부장/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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