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읽기 - 정재욱> 생보업계가 위기라는데…
생명보험업계 상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업계의 한 지인은 ‘하루하루 벼랑 끝을 걷는 심정’이라고 전한다. 한발만 잘못 내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정도로 판이 위태롭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찬찬히 들어보면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당장 밖으로 드러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른바 업계 빅3로 꾭히는 삼성ㆍ한화ㆍ교보생명이 구조조정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전체 인원의 15%인 6700명을 내 보냈다. 한화와 교보도 적지않은 인원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생보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차(利差) 역마진 때문이다. 지난해 생보사 업계 운용자산이익률은 4.5%인데 반해 보험료적립금 평균 이율은 5.2%에 달했다. 역마진 폭이 0.7%포인트나 된다. 1000원을 투자해 45원을 벌었는데 고객에게 내줄 돈은 52원이니 장사를 할수록 밑지는 구조다. 더 암담한 것은 이런 역마진의 터널을 언제 벗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공격적 투자로 수익률을 대폭 끌어올리든지, 지급 이율을 낮추거나 보험료를 올려 수익성을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위험성이 높아 안전성 유지가 중요한 보험회사가 할 투자 유형이 못된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15년 전 일본 생보사들도 그러다 줄줄이 도산한 생생한 전례도 있다.

그렇다면 금리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다. 금리 변동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 이율을 조정하려해도 금융당국이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중 금리가 움직이는 속도를 제 때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마진이 생기는 가장 큰 요인인 셈이다. 가령 보험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공시이율은 3.8~4.1% 수준이다. 2% 후반인 3년 만기 국고채 보다 훨씬 높고 은행 정기예금 금리와 비교하면 거의 두배다.

물론 금융당국이 업계를 ‘지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보험사간 고금리 경쟁으로 야기될 수 있는 부실을 미리 방지하고 무분별한 보험료 인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소비자 보호도 한 명분이다. 이해가 간다. 실제 금리가 좋았던 시절 업계가 과당 경쟁을 하는 바람에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5개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한데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보험료를 멋대로 올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담합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무엇보다 가격 결정에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 미국 일본 등 보험 선진국들도 이런 규제가 사라진지 오래다. 업계 자율에 맡기고 당국은 재무건전성 등 큰 틀에서 관리 감독만 철저히 하면 된다.

더 중요한 건 업계의 자구노력이다.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더 보여야 한다.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사업비 줄이기 등 고통분담은 필수다. 특히 생보사는 자산운용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보험 본래 기능에 충실하며 강점인 언더라이팅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정재욱 논설실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