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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 퍼거슨의 1%론과 홍명보의 ‘원팀’
#2003년 2월, 우리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FA컵(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정상을 가리는 대회) 5차전. 우리는 라이벌 아스널에 0대2로 패했다. 이날 데이비드 베컴은 윌토르가 넣은 아스널의 두번째 골 상황에서 수비 가담을 건성으로 했다. 베컴은 설렁설렁 뛰며 그로부터 도망다니기만 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그를 야단쳤다. (스타덤에 오른) 그 즈음의 베컴이 항상 그랬듯 그는 내 비난을 무시했다. 선수로서의 그를 있게 했던 자질, 수비에 가담하고 공을 쫓아다니는 일을 자신이 더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듯 했다. 그는 나와 3m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축구화가 한 줄로 바닥에 놓여있었다. 나는 축구화 한 짝을 걷어찼다. 축구화는 그의 눈두덩 위를 정통으로 맞혔다. 물론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게 덤벼들려 했고 선수들은 그를 말렸다. “너는 우리팀을 실망시켰다. 할 말 있으면 해봐”. 다음날 나는 그를 다시 불러들여 경기 비디오를 보여줬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앉아서 내 말을 듣는 동안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그는 자신이 감독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 맨유의 퍼거슨 전 감독이 최근 펴낸 자서선 ‘나의 이야기’(문학사상)에서 직접 밝힌, 그 유명한 베컴과의 결별을 다룬 일화다. 베컴은 이 일이 있고난 뒤 얼마후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일화에서 드러나듯 경기에서 성의 없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그가 월드스타 일지라도 퍼거슨은 호되게 다뤘다. 억센 스코틀랜드 억양과 함께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선수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할 정도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헤어 드라이어’다. “경기의 99%는 선수가 만들고, 1%는 감독이 만든다. 그러나 감독이 없으면 100%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퍼거슨 감독의 1%론은 위력적이다. 그의 재임 27년간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에서 13차례, FA컵에서 5차례 우승했다. 유럽 최고의 타이틀인 챔피언스리그나 기타 타이틀까지 합산하면 통산 우승 횟수는 ‘38’까지 늘어난다.

퍼거슨 리더십의 요체는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신념이다. 한국 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지론인 ‘원팀’(one team)과 일맥상통한다. 이 두 사람이 신앙처럼 추구하는 팀워크는 그러나 강압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터치로 빚어낸 ‘멘털리티’에 기반한다. 박지성은 자서전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에서 ‘위닝 멘털리티’가 강팀을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퍼거슨의 맨유가 최고의 팀인 까닭은 스타들이 즐비해서 아니고 그 어느 팀보다 의사소통이 잘되고 승패를 떠나 다음 단계를 대비하는 정신적인 준비가 잘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감독은 박주영이 병역 회피 논란 및 소속팀 주전 탈락으로 흔들릴 때, 기성용이 SNS 문자 파문으로 구설수에 오를때 든든한 바람박이 역할을 해주며 이들의 마음을 얻었다. 퍼거슨은 맨유의 주축이었던 칸토나가 폭언을 퍼부은 관중석을 향해 쿵푸킥을 날렸을 때, 호날두가 월드컵 경기 중 웨인 루니의 파울을 주심에게 고자질해 퇴장을 이끌어낸 뒤 거센 역풍을 맞았을 때 이들의 방패막이가 돼 주면서 팀 전력의 누수를 막았다. 퍼거슨은 현역서 은퇴해 레전드로 남았다. 홍 감독은 아직 써야할 신화가 많다. 그 화려한 날의 정점이 이번 브라질월드컵이라면 우리 국민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문호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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