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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이형석> 꼴찌의 기적
“자식 돌보지 않은 아버지, 교육감의 자격이 없다”는 고승덕 후보 딸 캔디고의 글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해온 아버지, 인지도가 없어 안타깝다”라는 요지의 조희연 후보 아들의 글 이후, 줄곧 잠잠하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판세가 요동쳤다. 문용린 후보와 고 후보는 각각 “패륜”과 “공작정치”라며 서로를 비난했다. 그동안 유권자들 사이에선 명망도에 묻혔던 후보들의 면면을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주식 투자’와 ‘공부 잘하기’에 올인하는 고 후보의 저서와 다중지성 및 도덕교육에 관한 이론서로 채워진 문 후보의 저술, 민주주의와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조희연 후보의 연구이력을 꼼꼼히 살피는 유권자들이 늘었다. 문 후보의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 여성 접대부 술자리 논란과 사교육업체와의 유착 의혹 등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유치원 내 괴롭힘 문제로 고통당하던 한 학부모가 각 선거본부에 장문의 질의서를 보낸 이후 유일하게 조 후보측으로부터 받은 정성스러운 답변이 화제가 됐다. 그러자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강력한 감정이입을 했던, 이른바 서울의 ‘앵그리맘’의 표심이 움직였다. 꼴찌나 다름없던 조희연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으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됐다.

누구는 ‘막장드라마’를 봤지만, 서울의 ‘앵그리맘’들은 철학과 윤리를 물었고 후보들의 가치관을 따졌다. 그들은 ‘막장드라마’라는 프레임을 단호히 거부했고, 제기된 이슈와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단순히 꼴찌가 일으킨 기적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모범적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사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 교육감 후보들이 파란을 일으키며 대거 당선됐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권이 “보수 진영의 분열이 초래한 결과”라는 정치공학적인 해석에만 집착한다면 안 될 일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가른 것은 단지 후보의 사생활과 가족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호’를 끌고 나갈 선장의 철학이었고, 그것을 집요하게 따져 물은 유권자들의 역동성이었다. 

이형석 라이프스타일부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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