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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 모진 ‘세월’ 을 이기고
#아르헨티나의 ‘5월 어머니회’는 지금도 세 가지의 금도를 지킨다고 한다. 첫째로 실종된 자식의 주검을 발굴하지 않으며, 둘째로 기념비를 세우지 않으며, 셋째로 금전 보상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 결코 죽은 것이 아니며,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절대로 돌 속에 가둘 수 없으며, 불의에 항거하다 죽거나 실종된 자식들의 영혼을 돈으로 모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71)는 국민이 모은 1억여원의 성금을 받았다. 하지만 “이 돈을 어떻게 쓸 수 있겠나. 다른 아들 딸 지키는 데 써달라”며 국가에 기부했다. 이 성금으로 해군의 K-6 기관총 18정이 만들어졌다. 천안함 사건의 발생 날짜를 따서 ‘3·26 기관총’으로 이름지어졌다. 아들을 잃은 뒤 불면의 밤을 보내던 윤 씨는 TV를 보던 중 에티오피아가 6·25 전쟁 때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을 도운 나라임을 알게됐다. 낯설고 먼 타지에서 자식을 잃은 참전용사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 까. 윤 씨는 지난 3월 이 나라를 방문, 200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윤씨가 그랬듯이 세월호 침몰로 꽃다운 아이를 잃은 어버이들은 국민 성금 모두를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로 했다. 윤 씨는 해군함정의 K-6 에서, 세월호의 어버이들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서 자녀의 숨결을 느낄 것이다.

#영국의 희곡작가 버나드 쇼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타버려도 남아있어야 할 책이 있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성경의 욥기다. 욥은 재산을 모두 잃어도, 병으로 몸이 괴로워도,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견딜 수 없어도, 아내가 자신을 떠나버려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선하고 부유했던 욥은 신의 시험을 받아 하루 아침에 모두 것을 잃었으나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신은 욥이 잃어버린 것을 모두 회복시켜 줬다. 감사는 극한의 고통도 이겨낸다.

“우리 승묵이가 왔습니다.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이제는 이렇게라도 우리 품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승묵이가 돌아올 수 있게 간절함을 담아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안산 단원고 고 강승묵 학생 부모가 국민들에게 전한 감사의 편지다. 강 군의 부모는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생업인 수퍼마켓 문을 닫고 진도로 달려갔다. 그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부터 가게 셔터에는 승묵 군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형형색색의 쪽지가 붙었다. 승묵군은 그러나 며칠 후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왔다. 떼낸 쪽지들은 입관 때 강군 옆에 놓였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 앞에서도 강군의 부모는 감사를 말한다.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은 욥의 곁을 신이 지켰듯이 강군 부모 곁에는 고통을 함께 나누는 좋은 이웃이 있다.

미국 9·11 참사 추모제 때 낭송돼 지구인을 울린 인디언 구전 시 ’나는 천 줄기 바람‘은 인간도 우주 삼라만상의 일부분임을 나직이 읊조린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노래하는 것 처럼 “내 무덤 앞에 서지도 울지도 말라”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기에. 나는 불어 대는 천 개의 바람, 눈 위에 반짝이는 광채, 무덤 위에 내리는 별빛이기 때문이다. 바람, 햇볕, 별빛에 스며든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영혼이 모진 세월 앞에 선 어버이들을 사랑스럽게 감싸안을 것이다.

문호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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