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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한지숙> 우크라이나 속 ‘문명의 국경’
우크라이나(Ukraine) 국명은 슬라브어인 우크라이나(ukraina)에서 유래됐다는 게 많은 역사학자,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변경ㆍ접경(borderlands)’이란 뜻이다. 국명에서부터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드러난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도 독립된 국가 형태를 길게 유지한 적이 별로 없다. 몽골 지배를 거쳐,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편입됐고, 근세 들어 3세기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8월 24일 독립 이후 역사는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옛 소련 연방에 속했던 국가 가운데 국토 면적과 인구 면에서 러시아 다음이다. 그런데 전국은 ‘동’과 ‘서’로 분열된 사실상 단절국가다. 수도 키예프가 있는 ‘서’는 서유럽권 국가와 교류하며 라틴 가톨릭 문화를 수용했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면서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키웠다.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고향인 도네츠크가 속한 ‘동’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동방 정교를 믿으며, 유라시아의 유목민의 영향을 받았다. 이 ‘동’은 우크라이나 역사 발전에서 끊임없이 걸림돌이 돼 왔다. 현대 들어 세계열강이 자기편에 유리한 정치조직을 지원하면서 동서 간에 벽은 더욱 굳건해졌다.

지난 23년간 정치권의 ‘동’ ‘서’ 힘의 균형은 아슬아슬했다. 초대 대통령인 크라프추크(서)-2, 3대 쿠치마(동)-오렌지혁명을 거쳐 당선된 4대 유셴코(서)-5대 야누코비치(동)까지 ‘동’과 ‘서’가 번갈아 권력을 잡았다가 야누코비치의 실정으로 양편의 힘의 균형은 깨졌다. 현재 나라는 사실상 ‘파탄국가’의 지경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20년 전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와 관련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첫째 무력충돌, 둘째 동부지역의 러시아병합, 셋째 독립국 지위 유지다. 헌팅턴은 양국이 수세기 동안 교류하며 혼인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낮게 봤다. 둘째는 개연성이 높고, 셋째는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 상황은 셋째에서 둘째로 넘어가려는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세 번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동’의 반발이 누그러지거나, ‘연방제’로 개헌해 ‘동’의 자치권을 인정하거나, 동서 간 문화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십수세기에 걸쳐 각자 형성된 언어, 역사, 전통, 종교를 섞는 일은 23살 청년 국가엔 역부족인 일이다. 외려 ‘서’의 친서방 세력은 정권을 잡자마자 성급하게 러시아어 제2 공용어 법안을 폐기시켜 ‘동’을 자극하는 누를 범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문명의 국경’은 정치ㆍ지리적 실제 국경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 개인이 국적을 선택하고, 국경없는 무역과 글로벌 투자가 자유로운 ‘초(超) 국경’ 시대에, 크림이 먼저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국경을 자신들의 문명의 고향인 러시아에 맞춰 고쳐 그렸다. 크림은 그 대가로 한몫 두둑하게 챙긴다.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돼 면세 등의 혜택을 받을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밑에선 법에 금지돼 불가능했던 카지노리조트를 건설, 러시아의 ‘라스베이거스’로 변신할 예정이다. 

한지숙 국제팀 차장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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