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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불치병은 없다”
관절염 이어 노인성 치매 치료제 도전
줄기세포로 난치 질환 정복 나서 

“치매 치료의 희망이 이제야 보입니다. 치매로 인한 뇌 손상의 지연 또는 복구 가능성을 1차로 확인했습니다. 동물과 사람 대상 안전성 시험을 마쳤고 이제 유효성을 평가받을 차례죠.”

지난 20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전 세계 의약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 투약을 위한 첫 삽관 시술이 진행됐다. 이날 삽관이 시술된 4명의 치매 환자에게는 2주가량의 회복기 후 ‘뉴로스템-AD’가 3회 투여된다. 뉴로스템의 약효를 확인하는 임상시험(1상 및 2a상)이 드디어 실시되는 것이다. 뉴로스템은 메디포스트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성 치매 줄기세포 치료제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지금까지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현재 치매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정도의 약물이 있을 뿐이다. 뇌 세포의 퇴행적 변화와 이로 인한 질환에 대한 대응 수단이 아직 전무한 것이다.

고령화와 함께 급증하는 각종 질환 중에서도 가장 문제시되는 게 노인성 치매다. 치매는 환자 한 사람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을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협 요인이다. 국내 치매 환자 수는 2013년 현재 57만6000여명으로, 가족까지 감안하면 최소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치매로 고통받고 있다. 


양윤선(50) 메디포스트 대표는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시절(1994~2000년) 혈액암(백혈병) 환자들이 골수를 이식받지 못해 죽어가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이의 해법으로 일찌감치 주목한 게 출산 후 버려지던 탯줄의 혈액(제대혈)이다.

탯줄 혈액에는 성체 줄기세포의 일종인 조혈 모세포가 다량 들어 있는데 이는 혈액이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원시 세포다. 따라서 백혈병, 소아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 골수 이외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양 대표는 제대혈 내 줄기세포를 배양해 난치성 질환의 치료제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제대혈 통한 난치병 치료 위해 바이오벤처 창업=“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하던 시절, 백혈병이나 소아암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이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자주 봤습니다. 환자들이 골수 대신 제대혈을 이식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것이 창업의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 양 대표는 2000년 메디포스트를 설립, 바이오벤처 CEO의 삶에 도전했다. 이때부터 봄날 왈츠처럼 평온했던 그의 삶은 풍랑 만난 돛단배처럼 요동치며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창업 이후 13년 동안 성공보다는 실패와 위기가 더 많았습니다. 창업 3년 만인 2003년의 위기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제대혈 줄기세포 보관 사업이 인기를 끌자 10여개의 업체가 우후죽순 생겼고, 덤핑경쟁이 난무했다. 설상가상으로 제대혈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퍼졌다. 회사의 매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룰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넘겨야 하는 상황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언론사와 정부기관은 물론 병원, 산모교실 등 전국을 찾아다녔습니다.” 양 대표는 회사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마케팅 전략도 전면 혁신했다. 


2005년에는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줄기세포 전체에 대해 오해와 불신이 커지면서 투자 유치도 어려웠다. 신약 임상시험마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300억원에 이르던 연매출은 100억원 이하로 줄었다. 2~3년간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어려웠지만 연구ㆍ개발(R&D) 투자를 매출 대비 50% 이상 유지하며 임상시험을 강행했다. 두 번의 위기는 회사를 강하게 만들었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정신이 확산됐다.

▶11년 만에 나타난 성과=양 대표는 2000년 메디포스트를 창립하면서 생명자원으로서 제대혈의 가치와 이를 이용한 줄기세포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느끼고 제대혈은행도 만들었다. 제대혈이나 줄기세포의 개념조차 분명치 않던 시기여서 연구와 마케팅은 물론이고 경영상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해 3월, 더는 손을 쓸 수 없었던 혈액암 환자에게 제대혈을 이식해 생명을 되찾아줬다. “의료진과 보호자는 물론 환자도 모두 제대혈 이식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치료 효과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제대혈 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는 메디포스트의 첫 치료 사례로 남게 됐다.


2001년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이 국책연구과제로 선정돼 R&D에 착수한 이후 첫 성과는 11년 만에 나타났다. 2012년 1월 세계 최초로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의 국내 품목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는 퇴행성 또는 반복적 외상에 의한 무릎 연골 결손 치료제로, 다른 사람(동종 타가)의 제대혈에서 뽑은 중간엽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약이다. 연골이 손상된 이의 무릎을 절개해 주입하면 연골을 재생시켜 준다.

카티스템은 연령 제한 없이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외 1000여명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카티스템은 현재 전국 종합병원 및 정형외과 등에서 투여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임상환자 투여(1ㆍ2a상)와 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판권계약에 이어 홍콩에서도 투여 수술이 지난해 6월부터 실시됐다.

지난 1월에는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도 방한해 카티스템 시술을 받고 돌아갔다. 그는 최근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인공 관절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양 대표는 “카티스템의 개발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임상에서 97.7%의 치료 효과를 보인 만큼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양 대표는 요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의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는 급증하는데 아직 뚜렷한 약이 없다. 제대혈 줄기세포를 활용한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뉴로스템)와 발달성 폐질환 치료제(뉴모스템) 등 후속 치료제를 R&D 중이다. 성체 줄기세포로 치료제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질환은 200여가지에 이른다. 양 대표는 “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도 치료제 개발에 실패하고 두 손 들었다”며 “현재로서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가 상용화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임상1상을 마치고 2상에 들어가 약물 투여가 곧 시작된다. 현재 희귀 의약품에 대해서는 임상2상 후 조건부 허가를 해준다. 줄기세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줄기세포 치료제도 안전성이 확인됐고 기존의 치료제가 없는 난치 질환용일 경우 조건부 허가를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업이라 이런 제도적 난관이 무척 힘듦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습니다.” 양 대표의 다부진 각오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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