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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함영훈> 인문학 열풍과 결핍 사이
창원상의는 올 초 ‘인문학이 기업 경쟁력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련 강좌를 열었다. 2월엔 대구 성서공단이 예술과 인문학, 부자들의 철학과 전략, 성공하는 기업가들의 관상법, 자아발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인문학 특강을 신설했다.

인천대 평생교육원이 최근 개설한 인문학 강좌 커리큘럼은 디지털시대의 변화 관리, 나의 가치를 통한 행복한 삶 만들기 등이다. 순천향대는 구로 IT기업 43곳과 인문학 강좌를 공유하고 산학협력도 도모한다. 서울대, 대한상의의 고액 인문학 과정엔 사회지도층이 몰린다고 한다. 신입사원 공채 때 삼성은 인문학 문제를 출제하고, 현대차는 역사에세이를 도입했으며, SK는 인ㆍ적성시험에서 역사 객관식 10문항을 신설했다. ‘인문학에서 보험을 만나다’는 주제의 한 보험사 교육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여야의원 31명은 급기야 인문학 진흥법을 발의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듯하다. 과연 그럴까.

한국출판인회의가 이달 중순 집계한 베스트셀러 톱12에 ‘자력’으로 오른 인문학 서적은 없다. 영화 ‘겨울왕국’ 관련서 4종과 드라마에 나온 ‘신기한 여행’ 등 ‘스크린셀러’가 득세하고 소설, 여행서가 몇 자리를 꿰찼다. 인문학으로 볼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감정수업’, ‘1㎝’, ‘인생수업’이 나머지를 메웠지만 저자들의 TV 출연 등에 따른 유명세 덕이 컸다.

‘도서관 천국에 사는 문화 시민’이라는 서울 사람들의 작년 독서량은 11.96권으로, 2008년보다 7.52권이나 줄었다. 아예 독서와 담 쌓은 사람은 26%였고, 1년간 도서관 한 번 안 간 시민은 74%나 됐다. 독서결핍증의 가장 큰 이유는 “바빠서”였다. 최근 5년간 4년제 대학 인문학 학과 400여개가 사라지면서 캠퍼스에는 ‘인문학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열풍과 결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 가치 탐구와 자기 성찰의 과정이어야 할 인문학 습득을 한쪽에서는 경영학 아래에 두어 인간관계, 설득 마케팅 기술로 활용하고, 다른 쪽에선 ‘현실성 없는 것’으로 간주해 배척한다는 느낌이다.

사전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성, 인간애를 뜻하는 휴머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됐고 인간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열풍을 느끼는 쪽이나 결핍을 가진 쪽이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몸에 밴 기능주의, 지식 도구주의가 인문학의 온전한 효능을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운 사람이 그러면 쓰나’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탐구하고 실행에 옮겼더라면, 책의 가르침이 곧 현실임을 알게 되고, 그런 인문학이 강물처럼 흐르는 대지 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살아 숨쉬며, 합리적ㆍ생산적ㆍ인간적인 사회발전 방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았을까.

인문학이 사회발전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교양서 속 성현의 말씀과 우리가 사는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런 일은 필부필부(匹夫匹婦)보다는 많이 배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혜와 실천에 기대는 게 옳지 않은가. 

함영훈 라이프스타일 부장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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